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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08. 2024

3대 맥주공장 투어 2) 기린 고베 공장

오사카의 이색 체험 (2) 


2) 기린 고베 공장



아사히 스이타 맥주공장을 다녀온 뒤로 맥주공장 투어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특히 기린 맥주는 사실상 이 투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맥주다. 기린 생맥주를 처음 마시고서 일본의 맥주 맛을 조금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기린 고베 공장은 고베라고 하지만, 우리가 고베에 간다고 할 때 흔히 말하는 항구 지역이나 기타노이진칸 지역과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고베의 꽤 북쪽에 있는 '미타' 역 또는 '플라워타운' 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기린 고베 공장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미타 역까지 전철로 이동하는 것도 두 차례 갈아타고서 겨우 도착했으나, 도착시간을 잘 맞추지 못해 셔틀버스를 놓치고야 말았다. 택시를 타기엔 너무나 비쌌고 걸어가기엔 거의 7km의 거리라, 결국 절반 정도는 버스를 타고 절반 정도는 걸어서 예정된 시간에 늦지 않게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도 일반적인 시내버스가 아닌 우리로 치면 광역버스 같은 개념의 버스였다. 심지어 번호도 없는 버스여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이거 타는 게 맞나?" 싶은 채로 아리송하게 있었다. 버스를 내려서는 맥주공장까지 40분가량 시골길을 걸었다. 그렇게 "현지인처럼, 현지인처럼!"을 외치더니 이제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시골길까지 걷고 있구나 싶었다. 물론 힘든 마음보다는 "지금 아니면 언제 고베의 산골 시골길을 걷고 있겠어."라는 낙천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40분을 걸어 공장에 도착하니 아까 탔어야 했던, 놓쳐버린 셔틀버스가 공장 앞에 서 있었다. "5분만 빨리 도착했어도 저걸 탔을 텐데. 이 고생은 안 했을 텐데."라는 괜한 허무함이 조금 밀려왔지만 그것도 잠시, 드디어 가장 기대하던 기린의 맥주로 이 힘든 노고를 치하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애당초 아주 넉넉하게 시간을 가지고 나왔던 터라 투어 시작 시간까지 공장 로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 직원이 오늘 투어 프로그램에 대한 브로슈어를 주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한국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사히 공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국어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기린 맥주공장의 투어는 굉장히 어려 보이는 한 여자 직원 분이 진행했다. 누가 봐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앳됨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약간은 순조롭지 못한 진행, 그러면서도 잘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누가 봐도 의욕 가득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었다. 내가 저 기분이 무엇인지 잘 알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난번보다는 괜스레 조금 더 그녀의 안내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눈을 마주치는 고객 하나하나마다 밝게 웃음으로 대응하던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기린이 주력하는 상품의 이름은 '이치방 시보리'다. '이치방'은 '첫 번째', '시보리'는 '짜내다'라는 뜻이다. 즉 이치방 기린은 처음 짜낸 맥아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일반적인 맥주는 보통 처음 그리고 두 번째 짜낸 맥아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처음 짜낸 맥아만 사용하면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지고 원가가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치방 시보리는 원가가 더 들어가더라도 처음 짜낸 맥아로만 맥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그렇기에 향이 풍미롭고 보리 본연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오히려 맥주 향을 줄이고 드라이한 맛으로 승부를 보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에 정면 대응하는 기린의 전략이지 않을까 싶다.


아사히 공장 투어가 세련되고 트렌디한 느낌이라면 기린 공장 투어는 조금은 레트로 하면서도 본질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귀여운 요소도 많았다. 특히 맥아의 방울을 형상화한 벽면의 구멍에서 맥즙 샘플 잔이 나온다든지, 맥아가 어떤 식으로 발효되는지 설명하는 영상에서 효소를 먹는 모습을 애니메이션화한 것이라든지 말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안내되는 모든 영상 자료에서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점이었다. 아사히 공장에서는 줄의 한국어 자막도 없었다. 그러나 기린에서는 처음 제공되었던 한국어 안내 자료부터 영상 자막까지 모든 것이 한국어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린 공장에서는 주요 외국어로 된 안내 자료와 자막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다국적으로 있으면 영어로 제공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외국인이 우리밖에 없어서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었던 것이다. 너무나 섬세한 배려이지 않나. 영어 하나로 퉁치고 말아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상황임에도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한국어 자막을 제공해 준 세심한 배려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또한 아까 언급했던 '의욕 가득한' 사회초년생 직원은 외국인인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는 가이드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영어로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외국인인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다만 그녀도 영어는 익숙하지 않았던지 일본어로 설명을 끝내고 나서는 별도의 대본에 있는 영어를 더듬더듬 힘겹게 읽어 주었다. 아마도 아직은 영어 버전은 자주 하지 않았던 것인지 꽤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비록 그녀의 일본어나 영어나 둘 다 못 알아듣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외국인으로 인식하고 계속해서 신경써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투어 내내 고마운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영양갱을 오늘 가져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산 공정까지 투어를 마치고 시음 시간이 되었다. 맥주 맛은 역시나 "말해 뭐 해."였다. 내 입맛을 사로잡았던 난바 기린시티의 그 풍미로움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다만 기대가 많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난바에서의 첫인상이 너무 강했던 걸까. 난바보다 더 좋은 맛을 조금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어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셔틀버스까지 놓치며 힘들게 찾아온 곳이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가이드 직원 역시 마지막까지 우리 자리 쪽으로 와서 오늘 투어가 어땠는지, 맥주 맛은 괜찮은지 세심하게 물어봐 주었다. 심지어 두 번째 샘플러 시음을 하면서 받은 샘플러 3종에 대한 안내 자료조차도 한글로 되어 있었다. 오사카의 그 어떠한 관광지에서도 이보다 한글을 잘 준비해 둔 곳은 없었다. 친절한 직원들, 맛있는 맥주, 세심한 배려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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