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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10. 2024

3대 맥주공장 투어 3) 산토리 교토 공장

오사카의 이색 체험 (3) 


3) 산토리 교토 공장



앞서 체험한 아사히 스이타 공장, 기린 고베 공장 두 곳의 투어 만족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마지막 하나 남은 산토리 교토 공장 역시 대미를 장식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산토리. 한국에서는 일본 맥주 중에서는 인지도가 조금 낮은 편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하이볼 열풍으로 인해 위스키 인지도가 매우 높은 브랜드다. 특히 2024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는 '히비키', '야마자키' 위스키 역시 모두 산토리의 제품이다. 실제로 산토리가 먼저 시작한 주류는 1929년 출시한 '산토리 위스키'이며, 맥주는 훨씬 나중인 1963년에 출시했다. 이러한 이유로 산토리는 맥주 공장 투어뿐만 아니라, 위스키 공장 투어도 있다.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라고 하는 곳인데 이곳의 예약 경쟁은 맥주 공장보다도 훨씬 치열해서 보통은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산토리 교토 공장은 교토의 초입에 있는 '니시야마텐노잔' 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이기도 하고 셔틀버스가 자주 다니기도 한다. 나름 세 번째 맥주공장 체험이라고, 산토리 공장에 갔을 때는 이전 아사히와 기린 공장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기도 했다. 공장 울타리 입구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건물 밖에서부터 직원들이 고객들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혼자 방문했기에 일본어를 잘 못한다고 말하자 곧바로 영어로 오늘의 투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일본에 와서 좋은 것은 어딜 가든 대체로 이러한 친절함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비에 들어서자 곳곳에 푸른 숲 속의 큰 사진이 곳곳에 보였다. 맑고 깨끗한 자연을 강조하는 것일까. 문득 산토리 교토 공장의 정식 명칭, '산토리 천연수 맥주공장'이 떠올랐다. 그렇다. 아사히가 드라이하고 청량한 맥주를, 기린은 처음 짜낸 맥아의 깊은 향을 강조한다면, 산토리는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천연수의 '물 맛'을 많이 강조하는 듯하다. 투어 내내 물에 대한 설명이 자주 있는 것을 보았다. 맥주는 결국 일종의 물이 아니던가. 물이 전부라고 해도 될 맥주의 물 맛에 신경을 쓴다고 강조하는 것은 꽤나 그럴듯한 설득이었다. 



맥주의 기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맥아'와 '홉'에 대해서도 매우 많이 강조하는 듯했다. 특히 맥주 특유의 씁쓸한 향과 풍미를 나게 하는 홉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또한 아사히의 '슈퍼 드라이', 기린의 '이치방 시보리'가 있듯이, 산토리의 주력 상품은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인데, 여기서 몰츠(Malts)는 맥아를 말한다. 즉 맥주에 들어가는 물, 홉, 맥아 등의 모든 재료 하나하나를 천연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산토리 맥주의 핵심이었다.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는 일본의 또 다른 대표적인 프리미엄 맥주인 '에비스'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금은 급이 더 높은 프리미엄 맥주이기도 하다.



천연의 싱싱한 재료를 강조하는 산토리답게, 공장 투어도 가장 생생하게 진행되었다. 산토리 공장 투어에서의 가장 차별된 점은 맥아를 추출하고 발효하는 대형 탱크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제조 기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공정을 과감하게 오픈함으로써 고객들은 훨씬 현장감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탱크가 모여 있는 공정의 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곧바로 느껴졌다. 한 1분 정도 지나자 저절로 땀이 날 정도의 열기였다. 뜨거운 열기, 그리고 그 열기 속에서 팔팔 끓는 맥아의 묘한 맥주 냄새까지 더하자, 내가 정말 맥주공장에 와있다는 생각이 오감을 통해 느껴졌다. 마치 찜질방의 황토방, 맥반석 방처럼 '맥아 방'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온몸을 덮는 열기와 향이었다.



아사히, 기린 공장은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투어가 진행되는 것에 반해, 산토리는 영상을 보고 시음을 하는 장소와 공장 투어를 하는 장소가 다소 떨어져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로 인해 공장 내부로 이동할 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버스를 타니 공장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마치 에버랜드의 사파리에 온 것처럼 공장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견학할 수 있었다. 기존 아사히, 기린에서의 체험은 극히 정해진 경로 내에서 정해진 체험을 하는 느낌이라면, 이곳에서는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가이드 직원은 무언가를 계속 설명을 하는데, 일본어를 못 하는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흥미롭게 듣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함께 이 투어에 푹 빠져든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은 역시 맥주공장 투어의 하이라이트, 시음 시간이다. 산토리 맥주공장 투어는 모든 과정이 무료다. 아마도 아사히, 기린도 원래는 무료였을텐데 산토리는 그 원형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주는 맥주는 산토리가 가장 많다. 아사히가 맥주 2잔, 기린이 맥주 1잔에 소량의 샘플러 3잔이었다면, 산토리는 맥주 2잔, 그리고 샘플러 3잔을 준다. 처음 한 잔을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로 마시고, 샘플러 3잔을 맛본 다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다. 다만 맥주는 이렇게나 많이 주면서 맥주를 마실 시간은 가장 빠듯하게 주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맥주를 마시면서도 계속해서 안내 직원은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캔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법, 맥주 거품을 잘 내는 법 등에 대한 내용인 듯했다. 고객에게 하나라도 더 전달하려는 모습이 꽤나 진정정 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종합 1등은 이곳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순위를 매겨 보았다.



시음까지 모든 과정이 마치고 모든 투어의 과정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구글 번역기를 켜서 "아사히, 기린 공장을 모두 가보았지만 여기 산토리 공장이 가장 좋았어요."라는 말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안내를 담당한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이치방데스!"라고 말씀드렸다. 직원 분은 갑자기 내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자 눈이 동그라지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가 구글 번역기에 쓴 내용을 읽고는 너무나도 밝음 웃음과 함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함께 뿌듯했다. 그래. 이런 사소하지만 따뜻한 한 마디가 이러한 직원 분들에게는 큰 기쁨이겠지. 나의 이러한 작은 칭찬이, 그분에게 기쁨이 되었기를, 그리고 가이드 일을 하는 데에 있어 보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산토리에서의 맥주 공장 투어도 마무리되었다. 



4) 3대 맥주 공장 투어를 마치며


"일본의 성장은 맥주와 함께였다."


삿포로 맥주 CF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이자 가수, 기무라 타쿠야가 한 말이다. 맥주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사카 맛집 소개로 유명한 유튜브 '오사사(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의 마츠다 부장 역시 어느 맛집에 가든지 요리가 나오기 전에 맥주부터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본다. "일단 맥주부터"라는 일본의 음주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그 나라의 서민들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소주가 그렇고 러시아의 보드카가 그러하다. 그러한 면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술은 의외로 사케도, 일본식 소주도 아닌 맥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느 식당에 가도 시원한 맥주 한 잔 팔지 않는 곳이 없었고, 아름다운 벚꽃나무 밑에서도, 한적한 공원에서도, 시끄러운 야구, 축구 경기장에서도 맥주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맥주공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 회사들이 이렇게 대중에게 맥주공장을 전면 공개하고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투어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맥주를 사랑하는 많은 일본인들과 소통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투어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사카 인근의 맥주 공장 투어를 마치며 일본의 각 맥주 회사별로 특징을 알게 되었고 나의 선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사히는 1등 브랜드다. 믿고 마시는 맥주 같은 느낌이다. 청량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라, 맥주를 잘 모른다면 누구나 쉽게 입문할 만하다. 기린은 '이치방 시보리'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처음 짜낸 맥아의 고소한 향 하나가 다른 어떤 맥주보다도 풍미가 가득하다. 원가가 더 들어감에도 맛과 향을 고집하는 기린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산토리는 화려하다. 천연의 고유한 맛 자체를 강조하는 특징답게 홉의 향도 강하고 독특한 산토리만의 맛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취향을 고르라면 풍미가 가득한 기린의 이치방 시보리가 내 마음속의 1등이다.


맥주공장 투어를 다녀오고 나니, 오사카에서의 식도락 여행도 한층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식당을 가면 그냥 스쳐가듯 보았던 주류 메뉴판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 길거리에서 보이는 식당에서도 밖에 어떤 맥주의 간판을 붙여 놓았는지 관찰하게 된다. 일본은 특이하게 한 식당에서 한 종류 내지는 최대 두 종류 정도의 맥주만 대체로 판매한다. 우리나라는 한 식당에서 다양한 맥주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마도 맥주 회사 간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고 서로의 권역을 존중하는 영업방식 때문이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언젠가 삿포로 맥주 공장까지 다녀오면 일본의 맥주 4대장 공장 투어를 모두 끝마쳤다는 뿌듯함이 있을 것 같다.


각 맥주공장에서 만난 안내 담당 직원들도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안내를 진행했던 아사히 직원, 다소 긴장한, 그러나 누구보다 밝은 미소로 열심히 가이드했던 사회초년생 같던 기린 직원, 하나라도 더 설명하고 안내해주고 싶어 가이드 일정 내내 열과 성을 다했던 산토리 직원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저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일했나 되돌아보았다. 그렇지만은 않은 지난날들이 금세 떠올랐다. 맥주 공장에 와서 맥주 맛만 배운 것이 아니라 '성실성'이라는 일본인의 국민성까지도 배웠다.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30년의 장기침체에도 굳건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도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맥주 맛도 모르면서."라는 그 광고 카피에 이제는 일본 맥주 맛은 내가 조금 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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