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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08. 2024

3대 맥주공장 투어 1) 아사히 스이타 공장

오사카의 이색 체험 (1) 3대 맥주공장 투어

"맥주 맛도 모르면서."


2010년을 강타한 국내 한 맥주 회사의 광고 카피다. 맥주는 그저 시원하고 탄산 쏘는 청량한 맛이라고만 알고 있던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래서 과연 맥주는 무슨 맛인가?"를 고찰하게 만든 '명(名) 카피'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저 광고를 본 뒤 괜히 "이 맥주는 향이 어떻고, 맥아가 어떻고, 홉이 어떻고..." 하는 어디서 주워들은 맥주와 관련된 잡지식을 풀며 맥주 맛에 대해 논하고는 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오사카에 와서 술은 가급적 적게 마시려 했다.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정신이 흐트러지는 기분도 별로 좋지 않았고, 체력 관리가 중요한 한 달 살기에서 술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싶어서 조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아예 안 마실 수는 없어서 가끔은 시원한 맥주 한 잔 정도 식사와 곁들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와 함께 난바 길거리를 다니며 종종 보았던 '기린시티 플러스 난바시티' 매장에 들어갔다. 보아하니 기린에서 직접 운영하는 가게 같은데, 아마 맥주 맛이 조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였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히 맞아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진짜 맥주 맛'을 보고야 말았다. 지나치게 톡 쏘지 않으면서도 풍미 가득한 향, 그러면서도 '싱싱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맥주 맛이야말로 진짜 맥주 맛이었다. 문득 여행 블로그를 찾아다니며 오사카에 맥주 공장이 몇 군데 있다는 글을 본 것이 생각났다. 기왕 오사카에 왔으니 오사카 맥주공장 투어를 한 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 4대장이 있다. 아사히, 기린, 산토리, 그리고 삿포로까지. 우리가 편의점에서 자주 보던 대표적인 일본 맥주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사카 근처에 아사히, 기린, 산토리의 3대 맥주공장이 있었다. 오사카의 아사히 공장, 고베의 기린 공장, 교토의 산토리 공장이다. 그리고 맥주공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일 공장 투어 시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거나 무료이고 꽤나 알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어 주말은 이미 향후 한두 달은 일정이 꽉 차있었다. 그러나 평일 여행이 가능한 나는 다행히도 각 맥주공장의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장 깨기'를 하는 마음로 하나씩 맥주공장을 깨러 다녔다.


1) 아사히맥주 스이타공장



가장 처음 간 곳은 아사히 공장이다. 오사카 북부에 있는 스이타 시(市)에 위치하고 있다. 갈색 지하철 사카이스지 선을 타고 쭉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서 '스이타'역에서 내린 후 약 10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3대 맥주공장 중에서는 오사카에서도 가장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교통적으로도 가장 편리한 곳이 위치해 있다.


스이타 역에서 내려 공장 앞에 다다르니 한 창고 공간이 보인다. 창고에는 엄청난 높이로 무언가가 쌓여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병맥주 박스들이다. 대충 봐도 내 키의 두세 배 정도는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맥주공장에 왔음이 실감이 난다. 공장의 건물 위 벽면에는 'Asahi', 그리고 'since 1889'라고 쓰여 있는 큰 간판이 붙어 있다. 1889년에 세워졌다니, 1989년생이 한국 나이로 올해 36살인데, 100년이 더 되었으니 무려 136년 된 회사다. 136년간 맥주를 만들어 왔으니 못 만들래야 못 만들 수도 없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에 압도되는 기분으로 공장에 들어갔다.



맥주공장 투어 프로그램은 3사 모두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에 가면 예약 확인을 하고 잠시 대기한 후 해당 시간에 예약한 다른 손님들과 함께 맥주공장을 둘러본다. 투어는 가이드 직원과 함께 다니는데 굉장히 밝고 상냥하며 설명을 잘하는 직원이다.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 나조차도 그 밝은 에너지만큼은 한껏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안내를 제공하는 별도의 앱도 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는 시끄러운 공장의 기계소리와 가이드 직원의 안내 등으로 인해 앱의 한국어 안내를 편하게 듣지는 못한다. 눈치껏 "대충 이런 말이구나." 알아들으며 공장을 따라다니는 정도일 것이다. 공장 투어는 대체로 맥아를 추출하는 공정, 발효하는 공정을 거쳐 포장하고 박스에 담기는 공정까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공정을 다 보고 나면 시음 코너를 끝으로 모든 투어가 마무리된다. 대략적인 소요시간은 시음시간까지 다 하면 대략 1시간 반 정도다.



투어 프로그램은 비슷하지만 3사의 입장료는 각각 다르다. 우선 아사히는 1000엔을 받는다. 원래는 무료였다고 하는데 언젠가부터 받는다고 한다. 대신 시음 시 맥주 두 잔과 아사히 로고가 새겨진 맥주잔 하나를 사은품으로 준다. 기린은 500엔을 받는다. 대신 기린은 맥주 한 잔과 샘플러 세 잔, 그리고 신상품 캔맥주 330ml짜리를 하나를 사은품으로 준다. 마지막으로 산토리는 심지어 무료다. 무료인데 맥주는 무려 두 잔과 샘플러 세 잔을 준다. 첫 잔은 공통으로, 두 번째 잔은 샘플러 중에 마음에 드는 맛을 한 잔 더 준다.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대신 사은품은 따로 없다. 세 브랜드 중에서는 가장 후발주자인 산토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맥주공장 입장에서는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보니, 각 회사에서 주력하는 메인 맥주 상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듯했다. 아사히의 현재 주력 상품은 'Asahi Super Dry(아사히 슈퍼 드라이)'이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아사히 수파 도라이'. 투어를 시작할 때 틀어준 여러 영상에서도, 가이드를 해주는 직원의 입에서도 연신 '아사히 수파 도라이'가 나와서 괜히 속으로 키득거렸다. 슈퍼 드라이의 '드라이'는 소위 말하는 '드라이함'의 그 뜻이다. 즉 맥아의 풍미가 많기보다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청량하고 가벼운 그런 느낌의 맥주다. 1987년, 내가 태어난 해에 슈퍼 드라이도 세상에 태어났다. 기린, 산토리 등 후발주자의 견제를 심하게 받던 아사히는 슈퍼 드라이를 통해 일본 맥주 일인자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사히의 공장 투어는 3사 중 가장 세련되고 트렌디했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아사히 맥주 생산 공정을 체험하기 위한 다양한 최신 설비들이었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아사히 맥주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지 큰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VR 장비도 있었다. 마치 내가 맥주가 된 것처럼 맥아에서부터 시작하여 발효, 포장의 과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VR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또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놀이기구와 같은 장비였다. 놀이공원에 가면 있을 법한 대형 화면에 제자리에서 앞뒤좌우로 움직이며 바람과 물도 나오는, 가상의 화면 속 맥주공장을 마치 롤러코스터 타듯이 현장감 있게 즐기는 코스였다. 역시 게임의 왕국답게 퀄리티는 매우 훌륭했다. 맥주공장 투어만 아니었다면 놀이공원에서 돈 받고 타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다. 투어 전반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적인 시도를 굉장히 많이 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었고, 기린과 산토리 공장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스크린 투어가 끝나고 나면 맥주를 포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단 맥주공장이 아니더라도 공장의 자동화 시스템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굉장히 흥미롭다. 평소에 자주 하지 못하는 구경거리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는 공장의 기술력에 새삼 놀라고는 한다. 병 또는 캔에 담긴 맥주는 뚜껑을 실링(ceiling)되는 과정을 거쳐 차곡차곡 박스에 포장되고 있었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인쇄소 및 제본소에 견학을 간 일이 있다. 차곡차곡 인쇄된 종이가 쌓이고 잘리고 제본되어 하나의 책으로 나오는 과정을 바 라보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마치 인쇄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틈없이 줄지어 나오고 있는 맥주들을 바라보며 "저렇게 많은 맥주를 누가 다 먹고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이외에 여러 투어 프로그램을 약 한 시간가량 보고 나면 대망의 시음 시간이다. 시음은 별도로 마련된 시음 장소에서 진행되는데 마치 바(bar)와 같은 장소에 맥주 디스펜서가 종류별로 있었다. 처음 마신 것은 슈퍼 드라이부터였다. 음료는 뭐든 갓 만들어낸 음료가 당연히 맛있다.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만든 커피, 갓 짜낸 오렌지 주스 등이 그렇다. 맥주 역시 그랬다. 여긴 맥주공장이고 여기서 갓 만들어 낸 맥주를 마신다니. 술을 적게 마시겠다는 각오는 잠시 덮어둔 채 이건 일본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합리화를 하며 첫 모금을 마셨다. 역시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난바의 기린시티에서 맛보았던 그 싱싱함이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정말이지 맥주이지만 '싱싱함'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강한 향을 좋아하는 나에게 약간은 '심심한' 맛이기도 했다. 



두 번째 잔은 부드러운 맥주 거품이 올려져 있는 다른 맥주를 받았다. 마치 카푸치노와 같은 크리미한 거품이 맥주 맛을 훨씬 풍성하게 했다. 또한 맥주 맛도 맥주 맛이지만 두 번째 잔은 맥주 거품 위에 너무나도 예쁜 프린팅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라떼 아트 작품 하나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맥주를 다 마실 무렵 아사히 로고가 프린팅된 맥주 잔을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아사히 공장에서의 첫 맥주공장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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