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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12. 2024

Wow Wow Wow 세레소! 오사카 축구 직관

오사카 이색 체험 (4)


무계획으로 오사카에 왔지만, 오사카에서 꼭 하고 싶었던 몇 가지가 있다. 앞서 소개한 맥주 공장 투어, 그리고 스포츠 경기 관람이었다. 한국에서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보러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면서는 꼭 해보고 싶었다. 스포츠 경기 관람이야말로 현지인들의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현지인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몇만 명 되는 사람들이 한 경기장에 모여 응원하는 모습, 경기를 보는 그들의 표정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들, 경기를 보며 먹고 마시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그 어떤 경험 못지않게 현지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다. 단 하루 두세 시간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열광하고 뜨거운 현장 속에 몸을 던져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오사카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은 2개가 있다. '감바 오사카', 그리고 '세레소 오사카'다. 처음엔 감바 오사카의 경기를 보는 것이 좋을지, 세레소 오사카가 좋을지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일정을 확인하고는 그 고민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열혈 팬이 많기로 유명한 감바 오사카의 경기는 대부분 좌석이 전부 매진이었고, 그나마 세레소 오사카의 경기는 맨 앞쪽의 비싼 자리 위주로만 조금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지출이 커서 조금 고민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합리화를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때마침 한국에서 나의 '한 달의 오사카' 집필을 응원하기 위해, 친구 Y가 놀러 왔다. 그렇게 B와 Y와 함께 경기 사흘 전, '세레소 오사카'와 '콘사도레 삿포로'의 경기를 예매했다.



세레소 오사카의 홈 경기장은 오사카 남쪽에 위치한 '요도코 사쿠라 스타디움'이다. '사쿠라'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레소 오사카의 홈 유니폼 색깔도 분홍색이다. 그것도 진한 분홍색. 약간은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경기장이 있는 '츠루가오카' 역에 도착하니 분홍 유니폼을 입은 많은 팬들이 함께 전철에서 내렸다. 경기장까지의 거리는 약 10분 거리. 경기장에 가까이 갈수록 분홍색 유니폼 또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많아졌다. 나 역시 세레소 오사카를 응원하기 위해서는 분홍색까지는 아니더라도 붉은 계열의 뭐라도 하나 챙겨 와야 했을까.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져 경기장 앞의 기념품 샵을 잠시 둘러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구경만 하다가 얼른 나왔다.



경기장 바로 앞에는 한 동짜리 나홀로 멘션(아파트)이 하나 있었다. (일본에서는 아파트 형태의 집을 멘션이라고 한다.) 약 10층짜리, 40세대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멘션의 베란다에는 세대별로 곳곳에 세레소 오사카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옆의 작은 주택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듣던 일본 축구 팬들의 리얼한 팬심을 보는 듯했다. 심지어 멘션의 베란다 위치에서는 경기장 틈 사이로 경기장 일부가 보일 만한 뷰였다. 한강 뷰, 바다 뷰, 마운틴 뷰 등 별의별 뷰가 다 있는데 여기는 축구장 뷰라는 말인가. 세레소 오사카 팬들에게는 꽤나 구미가 당길 만한 뷰 명당이었다. 아마도 세레소 오사카가 좋아서 이곳에 이사를 온 팬들도 있지 않을까. 



경기에 앞서 유명 인사의 인사말, 어린이 팬들이 부모님과 함께 깃발을 들고 나오는 행사, 그리고 선수 입장 및 소개와 같은 일련의 세레모니가 있었다. 초대형 전광판에서 나오는 화려한 영상들, 그리고 열광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스포츠 경기 관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흡사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경기장과 매우 근접한 우리의 자리도 그 분위기를 느끼는 데에 한몫했다. 우리 자리는 경기장 맨 앞에서 네 번째였는데, 육상 트랙이 없는 축구 전용구장이라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관람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선수들의 치열한 몸싸움, 프리킥이나 코너킥과 같은 박진감 넘치는 순간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뜨거운 응원 열기, 그리고 함성 소리였다. 약 2만 석의 경기장 좌석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고,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양 팀의 서포터즈들은 수십 개의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응원가를 부르고 응원 구호를 연신 외쳐댔다. 불과 2만 명 정도의 축구 구장인데 이 정도의 함성 소리라면, 5만 명이 넘는 경기장에서의 함성 소리는 어떠할까. 북은 또 어찌나 쳐대고 트럼펫은 또 어찌나 불어대는지. 이러한 모습들이 비단 이것이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과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또한 획일화된 응원 구호와 응원 동작으로 마치 하나가 된 듯 딱딱 맞춰서 응원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모를 일본스러움도 느껴졌다. 이제는 우리나라 아이돌이 칼군무의 상징이 되었지만 원래 칼군무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면 미국의 야구 경기나 유럽의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정해진 응원 동작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 응원가 정도가 있을 뿐. 이러한 면이 동양의 또는 아시아 특유의 집단적인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단 서포터즈 좌석에 앉은 팬들만 뜨겁게 열광하며 응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뒷자리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가 한 명 있었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이 친구가 응원하는 고함 소리에 귀가 아팠을 정도였다. 아마도 "힘내라!", "잘했어!" 등을 외치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특히 남자라면 유년 시절의 스포츠는 그 당시 삶의 전부나 다름없다. 나 역시 초등학생 때 TV 중계방송을 통해 배웠던 야구, 축구 지식을 아직까지도 써먹고 있으니 말이다. 전날 밤 스포츠 뉴스를 보고 알게 된 각종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소식을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떠드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고, 11살이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사직 야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던 설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뒷자리 아이도 그런 추억을 쌓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니 시끄러웠던 아이의 함성 소리도 들을 만했다.


원정팀인 콘사도레 삿포로 팀의 응원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햇빛을 정통으로 그대로 맞으면서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경기 내내 서서, 때로는 제자리에서 연신 뛰면서 삿포로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치 싸이 콘서트에 가면 연신 "뛰어!"를 외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햇살에 힘들었던 나는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삿포로는 여기서 꽤 먼 지역인데 이곳까지 응원을 하러 따라온 것일까. 아니면 오사카에 살고 있는 삿포로 출신 사람들인 걸까. 뭐가 되었든 그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좋았다. 역시 무엇을 하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종종 이렇게 의외의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양 팀의 팬들과 함께 부대끼며 두 시간 반 가량 축구 경기를 흠뻑 즐겼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리그 상위권인 세레소 오사카와 최하위권인 콘사도레 삿포로의 성적으로만 놓고 보자면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이러나저러나 어느 팀에도 연고가 없는 나에게는 "아무나 이겨라"였다. 물론 오사카가 이기면 50.1% 정도 더 좋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일본인들과 함께 축구 관람을 즐겼다는 것, 그리고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여행과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축구가 이렇게 재밌었는데 야구는 또 어떨까. 며칠 뒤에 있을 한신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를 기대하며 경기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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