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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13. 2024

야구 강국 일본, 한신 타이거즈 고시엔 직관

오사카 이색 체험 (5) 


일본인의 축구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한들 야구 사랑만 할까. 일본 야구 리그는 미국 메이저리그 다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리그다. 일본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에는 과거에는 이치로, 요즘은 오타니와 같은 야구선수들이 늘 1순위에 꼽힌다. 그중에서도 오사카 지역의 한신 타이거즈(통상 '한신'이라고 부르는 편)는 도쿄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일본 야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이다. 사실 진짜 오사카시(市)를 연고로 하는 팀은 오릭스 버팔로즈이고, 한신 타이거즈는 오사카 북쪽 효고현의 니시노미야시(市)를 연고로 하는 팀이다. 그러나 한신의 역사가 훨씬 오래되기도 했고 실력도 더 좋은 팀이라 그런지 오사카 사람들 중에서도 오릭스보다는 한신의 팬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어쨌든 오사카 사람들의 '한신 사랑'에 대해서는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며 여러 차례 느꼈다. 일단 동네 식당이나 작은 술집에 가면 온통 샛노란 빛의 한신 타이거즈의 굿즈로 도배되어 있는 가게를 가끔 만나고는 했다. 선수들의 유니폼, 한신 타이거즈의 엠블럼이 있는 휘장, 선수들이 왔다간 사인과 같이 한신 타이거즈를 상징하는 많은 것들이 가게 곳곳에 있기도 했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 오후가 되면 가게의 TV에서 한신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를 틀어놓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TV 밑에 삼삼오오 앉은 일본인들은 수다를 떨다가 야구를 보다가 하는 일을 반복하며 그렇게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한신 타이거즈는 불과 작년인 2023년도에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최근 전력이 있는 강팀이기도 하다. 심지어 일본 시리즈 우승은 무려 38년만이었는데, 38년만에 일본 시리즈를 우승하던 날, 오사카의 한신 팬들은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도톤보리 강가에 모여들어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한신의 팬들은 리그 우승이든 일본 시리즈 우승이든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하면 도톤보리 강물에 뛰어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날 역시 약 20명의 한신 팬들이 수백 명의 경찰의 엄호를 뚫고 끝끝내 도톤보리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2003년 한신이 우승했을 때는 무려 5300여 명이 도톤보리 강에 뛰어들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고 하니, 마냥 웃고 넘어갈 해프닝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오사카 사람들의 '지독한 한신 사랑'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인기만큼이나 한신 타이거즈의 경기 티켓을 예매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사실 축구는 경기 며칠 전에 일정을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좌석을 예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야구는 달랐다. 오사카에 도착한 4월 초부터 한신 타이거즈 경기 티켓을 알아봤지만 이미 4월은 전 경기 전 좌석 매진이었다. 그나마 5월 초 골든위크가 끝난 직후 다음 날 한신 타이거즈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경기가 있었는데, 외야석 저 윗편에 몇 자리가 남아 있어 "이거라도 어디야!" 하는 마음으로 예매했다. 심지어 한신의 홈구장인 '고시엔' 경기장은 무려 4만 7천 석이다. 2만 석의 요도코 축구 경기장보다도 두 배 이상 자리가 많다. 경기도 축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안 하지만, 야구는 네다섯 번씩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매가 꽉 찼다니, 정말 많은 오사카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 온다는 반증 아닐까. 이 인기 있는 경기를 직접 관람하게 되다니. 한 달의 오사카 생활을 정말 알차게 하고 간다.



경기 당일, 고시엔으로 가는 전철이 갑자기 사고가 나는 바람에 3회 정도가 시작할 때쯤 고시엔 경기장에 들어갔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고시엔 구장은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이면서 동시에, 프로야구보다도 인기가 많다는 일본 고교 야구의 결승전이 매년 열리는 구장이기도 하다. 고시엔에서 열리는 고교 야구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경기장의 흙을 한 줌 가져가는 문화가 있는데, 그동안 치열한 지역 예선을 밟아오며 고시엔 구장까지 왔기에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한다. 어쨌든 그만큼 일본 야구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고시엔 구장에 왔다. 지난번 축구장보다도 훨씬 빽빽한 자리였다. 나와 친구를 제외하고는 주변 대부분이 한신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일행이 함께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혼자 온 듯한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셋 있다. 첫째는 내 바로 옆자리에 혼자 온 사람이다. 혼자 왔는데도 어찌나 응원을 열심히 하던지.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그분이 열심히 응원가와 응원 구호를 외치는 덕에 나 역시 귀동냥으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혼자 와서 그렇게 노는 사람도 잘 없거니와 괜히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인데 역시나 일본에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앞자리에 앉으신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는 딱 봐도 한신의 찐 팬으로 보였다. 한신의 메쉬캡 모자와 모자 곳곳에 달려 있는 한신의 다양한 뱃지들, 그리고 샛노란 유니폼까지. 소위 말하는 진짜 '골수' 팬이었다. 한신의 역사가 1935년부터니 아마도 이 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때부터도 한신의 팬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평생을 한 팀의 야구팬으로 살아간다는 걸 어떤 것일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셋째는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던 히로시마의 남자 팬이다. 그 팬이 앉은 곳은 분명 한신의 응원석이었는데 홀로 새빨간 히로시마의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하고는 경기 내내 서서 히로시마를 응원하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한신의 노란색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히로시마를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저러면 약간 욕먹는 것 같던데. 여기서는 최소한 주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히로시마의 공식 서포터즈 좌석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히로시마를 응원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아무튼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히로시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의 자리는 이번에도 원정석 근처였다. 축구 경기에서 삿포로 팀의 팬들이 그러했듯, 이곳에서의 히로시마 팬들도 엄청난 응원 열기를 보여주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깃발을 흔들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응원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불러댔다. 축구 경기장에서는 '북'이 메인 응원 악기였다면 야구장에서는 '트럼펫'이 메인 악기였다. 팬들의 응원 구호에 맞춰, 곳곳에 심어진 약 5명의 연주자가 트럼펫으로 응원 멜로디를 부르고 있었다. 경기 내내 불고 있으니 숨이 찰 만도 한데 지친 기색이 없었다. 대부분 일본 축구 또는 야구팀의 서포터즈는 구단 또는 기업 등의 지원이 일체 없이 오로지 본인의 자비만으로 서포터즈 활동을 한다고 한다. 취미 활동에 그만큼 시간과 정성, 그리고 돈을 쏟아붓는 것일까. 나에게는 비교적 생경한 이 문화를 이곳에서는 정말 많은 일본인들이 즐기고 있었다.



그밖에 응원 문화도 한국과 비슷한 듯 조금씩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사실 한국 야구 문화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 많다고 한다. 특히 선수별로 응원곡이 다르거나 안타, 홈런 등을 쳤을 때의 응원곡, 또는 견제 등을 할 때의 구호가 있는 것은 일본에서 많이 넘어온 것으로 보였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일본의 응원은 굉장히 체계적이었고 또 다채로웠다. 한편으로는 다른 점들도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야구 응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치어리더의 응원이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우리나라는 내야석 근처에서 치어리딩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경기 내내 치어리더가 사실상 활동한다고 봐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각 회가 끝날 때 치어리더들이 잠시 나와서 응원을 유도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치어리더를 위한 무대도 따로 있지 않았고 경기장 바깥쪽에서 잠시 응원을 유도하다가 들어가고는 했다. 대신 인형탈을 쓴 양 팀의 마스코트가 중간중간 계속 나와서 재미있는 장면들을 보여주고는 했다. 



야구장 응원의 또 다른 큰 재미인 파도타기 같은 단체 퍼포먼스도 없어서 그런 부분은 아쉽기도 했다. 야구장의 로맨스라고 할 수 있는 키스타임 같은 이벤트도 없었다. 뭐, 당연한 것이다. 한국과 어떻게 다 비슷할 수 있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런 부분들을 하나씩 관찰하는 것이 이번 야구 관람의 가장 큰 재미였다.


안타깝게도 한신은 이날 히로시마로부터 2:0으로 지고 말았다. 나름 리그 선두에 있던 한신과 리그 중하위에 있던 히로시마와의 경기였는데 말이다. 지난번 축구도 그렇고 이번 야구도 그렇고 둘 다 오사카 연고 팀들이 강팀인데 내가 경기를 관람한 날들은 다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오사카에 와서 오사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를 봤다는 것은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경험이었다. 수만 명의 오사카 관중들과 함께 그들이 환호하는 모습, 기뻐 뛰는 모습, 아쉬운 상황에서 나오는 탄성들, 그리고 그 표정들까지도 생생하게 보고 느꼈다. 이 정도면 오사카에 제대로 푹 빠져들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아마도 나는 다음 여행이 어디든지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가 있다면 꼭 보러 갈 것 같다. 만약 언젠가 겨울에 오사카에 온다면 농구나 배구 경기를 꼭 보러 갈 것이다. 여기는 또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농구)'의 나라, '하이큐(배구)'의 나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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