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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05. 2024

간사이 사람들의 휴양지, 시라하마 3일차

간사이 소도시 여행 (6)


시라하마에서의 셋째 날, 마지막 날 아침이다. 전날처럼 산책을 가려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숙소 앞에 있는 고양이들을 찾는데 없었다. 이럴 수가. 어제 그렇게 많은 정을 나눴는데 없다니. 잠시 어디 간 것이겠지 하고는 약 30분 정도 산책을 다녀왔는데 그래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갈 준비를 하고는 약 2시간 정도 뒤에 다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마지막 기대로 숙소 앞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고양이들은 없었다. 혹시나 고양이들이 먹을 것을 보면 머물러 있을까 해서 아침에 다시 들어오면서 사료도 조금 두고 왔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고양이들과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작별한 것 같아 서운한 기분까지 들었다. 다음에 다시 이 숙소에 온다면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이틀 사이에 나 역시 아기 고양이들과 엄청 정이 들었던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숙소를 나와 숙소 앞에 있는 로손 편의점에 들렀다. 2박 3일 머무르는 동안 하루에 두세 번은 꼬박꼬박 왔던 편의점이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을 사고 나오는데, 시라하마 여행의 끝판왕 같은 자동차를 한 대 만났다. 시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양의 자동차였고 아마도 직접 제작한 것 같은 외관이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바로 저런 자동차 아닐까. 너무나도 장난감 프라모델처럼 멋지게 생겨서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자동차였다. 더 놀라운 것은 차 주인이었다. 아무리 젊게 봐도 70대, 아니면 8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는데, 뉴에라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를 모자에 끼우고는 청바지에 체크 남방을 입은 정말 힙한 할아버지였다. 어떻게 저렇게 멋진 차를 저런 할아버지가 몰 수 있을까. 흡사 연예인을 본 것처럼 그 차와 할아버지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의식했는지 내 쪽을 한 번 슬쩍 쳐다보셨다. 나는 진심으로 리스펙하는 마음을 담아 할아버지에게 엄지 척을 해드렸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는 씩 웃으시며 똑같이 엄지 척으로 화답해 주셨다. 그것은 완벽한 '따봉'이었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자동차 굉음을 내며 편의점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오사카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걸어서 15분 정도 가야 했다. 가는 길에는 시라하마 해변을 지나치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시라하마 해변을 눈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변에 다다랐는데 전날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 외에도 다른 쪽 해변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원반 같이 생긴 것을 던지고 뛰어다니는 스포츠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냥 일반 동호회라고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고, 경기도 한 네다섯 군데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필히 이건 대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스포츠인지 궁금했다. 해변에서 하는데 방식은 마치 풋볼 같으면서도 공이 아닌 원반을 던지는 게임이라니. 부산에서 자란 나조차도 처음 보는 게임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대회 운영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게임이냐고 물었다. 물론 친구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비치 아르띠메또!"라고 했다. 비치는 알겠는데, 아르띠메또가 뭔지 모르겠다. 네이버에 검색해 봐도 아르띠메또라는 스포츠는 없었다. 구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혹시 이게 영어인데 일본식 발음을 하신 것은 아닐까 해서, 네이버 파파고를 켰다. 그리고 파파고에 '아르띠메또'라고 말하고 음성인식 번역을 시켰다. 결과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바로 'Ultimate'. 한국식 발음으로 하면 '얼티밋' 또는 '얼티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Ultimate를 아르띠메또라고 발음한 것이다. '마끄도나르도(맥도날드)', '비끄방그(빅뱅)' 이후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일본식 발음이었다. 어쨌든 그분들께 감사함을 표현하며 이런 경기는 처음 본다고 말씀드렸다. 그분들은 한국에는 이런 것이 없냐며, 시간이 되면 체험하고 가도 된다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시라하마의 아르띠메또,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아르띠메또를 잠시 구경하다가 고속버스를 타는 정류장 쪽으로 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옆에 있는 한 광고 배너 위에 제비가 앉아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도 전혀 경계하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또 사진을 연신 찍었다. 시라하마.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새끼 고양이들을 만나고,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매도 보고, 시라하마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제비와 함께 했다. 살면서 제비를 그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양이들과 이틀 내내 교감했던 나에게는 그새 동물을 보면 반가운 마음도 조금은 생겼던 것 같다. 그 제비는 우리가 버스를 탈 때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라하마 제비의 환송을 받으며 그렇게 시라하마 여행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한 달의 오사카 생활의 정점은 2박 3일의 시라하마 여행이었다. 그래서 불과 이틀 반의 일정이었지만 다른 일정들에 비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시라하마 여행에 대한 회고를 남겼다. 여행의 낭만이 사라졌다고 느낀 오사카와도 많이 대비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직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때를 묻지 않은 일본 시골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곳이었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때를 묻지 않은 자연의 본연을 아직도 많이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결코 화려한 휴양지도 아니었고 재미있는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일본 그 자체였다. 내가 원했던 '현지인스러운' 생활을 하기에 더없이 충분했고, 충분히 그 생활을 누리고 즐겼다. 책을 쓰면서도 시라하마 여행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던 때가 가장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시라하마는 몇 가지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하나는 생전 몰랐던 멋진 자동차에 대한 나의 관심을 알게 되었다. 시라하마를 다녀오면서 나는 오사카에서도 길거리에서 다니는 자동차들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시라하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심지어 완구 자동차 브랜드인 '토미카'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일본의 뽑기라고 할 수 있는 '가챠'에서도 몇 안 되는 자동차 가챠가 있으면 꼭 돌려보고는 했다. 그만큼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다른 하나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물을 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했음을 고백한다. 동물 특유의 냄새가 싫었고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동물을 더욱 싫어했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시라하마 여행을 통해 그런 나의 취향이 바뀌었다. 이제는 지나가다가 고양이가 있으면 쳐다보게 된다. 그러고는 "쟤도 츄르를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며 혼자서 웃기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도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이 나오는 귀여운 영상이 있으면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놀란다. 내가 동물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고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안 변한다고 해도, 이렇게도 변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시라하마,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곳. 또 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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