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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06. 2024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 있는 도시, 히메지

간사이 소도시 여행 (7)


골든위크가 시작하는 주말을 시라하마와 함께 했다면, 골든위크가 끝나는 주말은 히메지, 오카야마, 구라시키로 마무리했다. 오카야마와 구라시키는 지하철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인접해 있기도 하고, 오카야마로 가는 길에 히메지를 들를 수 있어 흔히 이렇게 3개 도시를 묶어서 여행을 다닌다. 히메지를 가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히메지성 하나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고 불리는 히메지성은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성이다. 여느 성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새하얀 벽면, 그리고 흰색과 어울리는 저녁시간의 라이트업(light-up)사진을 보며 이 성을 실제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메다에서 한 시간 정도 급행전철을 타고 가면 히메지가 나온다. 히메지로 가는 길 역시 일본의 시골마을들을 지나간다. 지난번 시라하마 여행이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일본 시골에 대한 향수가 벌써부터 생긴 것 같았다. 그렇게 전철 창문 너머의 시골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금세 히메지 역에 도착했다. 히메지 역에 내리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여행용 가방이나 캐리어를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골든위크의 막바지를 즐기러 온 사람들, 또는 골든위크를 잘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역 한편에 놓여 있는 피아노에는 한 여자분이 혼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히메지의 첫인상이 이런 낭만적인 피아노 버스킹이라니. 이번 히메지 여행도 뭔가 좋을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숙소에 먼저 들러 짐을 풀었다. 역시나 히메지성 외에는 아무 계획 없이 온 여행이기에 그때부터 구글 지도에서 갈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 한 달의 오사카 여행은 대부분 이랬다. 큰 틀에서 어디를 갈지만 정하고는 세부적인 것은 그곳에 가서 발길이 따르는 대로 움직이는 것. 계획 없이 움직일 때 생기는 우연함에서 생기는 놀라운 일들이 대체로 더 짜릿했기 때문이다. 숙소 주변을 찾아보니 'Convention Center Area Himeji'라는 한 컨벤션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볼만한 전시가 있을까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오늘 컨벤션 내 공연홀에서 '히메지 재즈 페스티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침 11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5시까지 하루종일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내가 그것을 발견한 시간은 3시 반. 입장료는 1인당 1000엔이었다. 친구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 공연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가도 1000엔에 1시간 정도는 공연을 볼 수 있으니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자세히 알고 보니 이 재즈 페스티벌은 히메지 지역에 사는 학생 또는 성인 재즈팀들이 30분 단위로 공연을 하는 페스티벌이었다. 즉 전문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의 공연인 것이다. 일본 소도시 아마추어 재즈 밴드의 공연이라니. 그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함께 간 내 친구는 음악을 전공했다. 원래 공연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보면 더욱 풍성해지는 법이다. 아무튼 그렇게 숙소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다. 리셉션 데스크는 갑자기 온 우리를 보고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11시에 시작한 공연에, 공연 막바지 1시간 반 정도를 남겨 두고서 새로운 관객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에 입장하니 3시 반 공연 팀의 막바지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두 팀의 공연은 더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공연은 예상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았다. 이게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의 재즈 페스티벌이라면 이해라도 될 것 같은데, 히메지라고 하는 작은 소도시의 공연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것도 한두 팀도 아니고 종일 10개 팀이 공연을 진행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이라면 쉽게 연주하기 어려운 색소폰이나 트럼펫, 심지어 퍼커션이나 콘트라베이스까지도 수준급의 연주를 보여 주었다. 이들이 아마추어라는 것이 더 멋있게 다가왔다. 각자의 본업이 모두 있는데도 이 정도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진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관객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약 500명의 관객이 있었는데 대부분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60~80대 어르신들이 많았다. 재즈를 즐길 줄 아는 노인이라니. 단순히 멍하게 공연을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들은 하나하나 진심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가 깊어지면 깊어지는 대로 연주에 몰입하고, 신나는 부분에서는 함께 박수를 치며 화답하기도 했다. 공연자도, 관객도 너무나도 조화로운 완벽한 공연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샘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아직 우리나라가 따라잡지 못한 일본의 문화 수준인 걸까.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을 늦게 시작한 탓에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이러한 문화적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지냈다. 평생을 일만 하기 바빴고 성장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동안 이들은 이러한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니 샘이 나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의 경제성장이 늦어진 것이 일제 강점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우리도 이러한 문화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흥 많기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앞으로는 훨씬 뛰어난 문화강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매우 만족스럽게 관람한 공연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공연은 계획 없는 여행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히메지에 와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왔다면 이 공연을 볼 수나 있었을까. 계획대로 움직이느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을 본 일은 이번 한 달의 오사카에서 경험한 일 중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멋진 경험이었다. 이렇게 선물 같은 경험은 결코 우리의 계획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내가 깨달은 삶의 진리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을 끌고 가려고 부단히 애쓴다. 물론 삶은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일정 부분 맞다. 그래야 우리 삶을 관리할 수 있고 나쁜 선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어떤 면에서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때도 많다. 한껏 움켜쥔 손에 힘을 풀었을 때 그 손에 다른 것을 쥘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히메지 재즈 페스티벌이 그랬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것만으로 히메지에 온 이유는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선물이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는 히메지성을 보러 성 근처로 이동했다. 새하얀 히메지성을 바라보았다. 참 예뻤다. 왜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해도 지고 날씨도 흐리다 보니 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던 순간 신기하게도 라이트업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7시 정각이었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선물처럼 라이트업이 되었다.



라이트업이 된 히메지성을 더욱 가까이서 보고 싶어 성 근처로 더 걸어갔다. 성을 구경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그들도 아마 이번이 첫 히메지 여행이었던 것인지, 연신 "스고이! 스고이!"라고 말하며 감탄했다. 이 아름다운 성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시간적으로도 지금이 히메지성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하늘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적당히 어둑어둑하면서도 짙게 푸른 하늘, 그 아래 새하얀 빛을 뿜는 히메지성은 완벽한 대비를 이루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때에는 1분 단위로 하늘의 색깔이 금세 바뀐다.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히메지성을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또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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