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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08. 2024

어쩌다 들른 오카야마, 오카야마성과 붓카케우동

간사이 소도시 여행 (8)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2박 3일의 일정 중 하루가 지났고 남은 일정 동안 2개의 도시를 보려고 했다. 바로 오카야마와 구라시키. 숙소는 구라시키에 미리 잡아두었고, 간단히 오카야마를 보고 구라시키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궂은 날씨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오카야마는 건너뛰고 바로 구라시키로 가서 여유롭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히메지 역에서 아침 구라시키로 가는 전철을 탔다. 한 시간 반 정도 흘렀고 오카야마 역이 도착할 쯤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날씨가 조금씩 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와 나는 시라하마로 가는 길에 토레토레 시장에 갑자기 내렸을 때처럼 다시 한번 눈빛을 주고받았다. "내릴까?" "응. 내리자." 그렇게 또 한 번 갑작스럽게 우리는 오카야마 역에 계획 없이 내렸다. 우리 여행에서 즉흥성이 준 선물들을 이미 여러 차례 맛보았기에 우리는 자신 있게 결정했다.


골든위크의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오카야마 역에 내리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마치 우리 설 연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의 기차역 같은 광경이었다. 아마도 오카야마 또는 구라시키 일대에서 골든위크 연휴를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우리 역시 비가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몰라 오카야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오카야마에서 가장 먼저 구경할 곳은 바로 '오카야마성'이다. 그 외벽이 새카맣다고 해서 '까마귀성'이라고도 불리는 오카야마성. 전날 보았던 새하얀 히메지성과도 대조적이라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오카야마 역에서 오카야마성까지는 노면전차, 트램을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갈 수 있다. 일본에 와서 트램까지 타보다니.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트램에서 내려서 약 10분 정도 걸으니 저 멀리서 새까만 오카야마성이 눈에 보였다. 흰색의 히메지성이 아름다운 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새까만 오카야마 성은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강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새까만 오카야마성이 조금 더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다. 영화 '명량'에서 일본 장수들이 입었던 갑옷과 투구가 생각나던 그런 비주얼이었다. 일본의 유적지에 방문하면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좋으면서도 싫은 애증의 감정. 우리나라와 가장 이웃한 나라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늘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오카야마성 주변으로 흐르는 아사히 강과 일본의 3대 정원이라는 고라쿠엔 정원까지. 잘 꾸며져 있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 풍경을 보며 괜스레 그런 반감이 더 생기기까지도 했다.



성에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위세가 더욱 느껴졌다. 새까만 외벽의 오카야마성을 누가 '까마귀성'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참 잘 붙인 별명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까마귀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가 길(吉)의 상징, 까마귀가 흉(凶)의 상징이라면, 일본에서는 까마귀는 좋은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에서도 카리스노 배구부의 상징은 까마귀이기도 하니 말이다. 가까이 가서 까마귀성을 구경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까마귀성의 처마 끝에 까마귀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앉아 있었다. 반감은 반감이고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은 그것대로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나서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터라, 오카야마에서 점심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골든위크 연휴여서 그런지 영업하는 식당도 그리 많지 않았고 비는 다시 보슬보슬 내려오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어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구라시키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그렇게 구글 지도에서 열심히 식당을 찾은 결과 붓카케우동(냉우동) 집 하나가 영업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년 전 파주에서 붓카케우동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고는 굉장히 신선한 맛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차가운 우동이라니. 냉라면만큼이나 어색한 조합 같았지만 상당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 와서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다. '사누키 오토코 우동'이라는 우동 전문점이었는데 냉우동을 메인으로 하는 곳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은 나에게 있어 이번 오사카 한 달 살기에서, 아니 어쩌면 일본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맛집 1등이 되었다. 맛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한번 표현해 보려 한다. 일단 차가운 간장 소스의 맛이 소위 '단짠'이라고 하는 달고 짠맛의 조합이 완벽한 맛이었다. 약간은 자극적인 듯한 달고 짠맛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워서 그런지 거부감이 없었다. 고기 붓카케우동를 시켰는데 함께 나온 고기의 간도 적절하고 부드러웠다. 튀김도 맛있었다. 잘 튀겨진 튀김의 바삭거림은 물론이고, 붓카케우동은 통상 튀김 몇 가지 함께 나오는데 그중 간장에 통으로 절인 우엉을 튀긴 튀김이 있었다.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맛의 우엉튀김은 그야말로 밥도둑이 아닌 '면도둑'이었다. 어묵튀김도 굉장히 새로운 맛이었다. 어묵이라는 것 자체가 튀김인데, 거기에 다시 튀김옷을 입혀 튀긴 방식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면이었다. 우동이라는 것은 사실 면이 전부가 아니겠는가. 이곳에서 먹은 면은 쫄깃하면서도 충분히 익은, 밀가루 맛은 전혀 나지 않고 간장 소스를 충분히 머금은 그런 맛이었다. 말 그대로 태어나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었다. 



붓카케우동까지 다 먹고 가게를 나오니 그전까지 보슬보슬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있었다. 마치 오카야마 구경을 위해 잠시 비가 멈춰준 것처럼 신기하게도 잠시 멈췄던 비는 그렇게 다시 내리고 있었다. 두세 시간 남짓한 오카야마에서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비가 그쳐 갑작스럽게 내리게 된 오카야마에서 만나게 된 아름다운 풍경들. 까마귀성 처마 끝에 보란 듯이 앉아 있던 까마귀 한 마리. 문을 연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찾은 한 동네 식당에서 먹은 내 인생 최고의 붓카케우동까지. 역시나 무계획 속에서도 삶이라는 여행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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