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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20. 2024

한 달 살기 중도 포기할 뻔한 이야기

오사카 한 달 살기 현실 후기 (6)


한 달 살기의 3분의 2 정도를 지나던 시점에 시라하마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숙소를 예약하고 차편을 예약했다. 그다음 주에는 히메지와 오카야마, 구라시키로의 여행도 예정되어 있었다. 한 달 살기의 전반부에는 오사카 위주로 경험하고 후반부에는 교외로 떠나 여러 소도시를 돌아볼 생각으로 큰 틀에서 계획하던 것이었다. 그렇게 계획 없는 한 달 살기 속에서도 나름 계획을 세워가며 한 달 살기를 보내고 있었다.


시라하마로 가기 전 날, 한국에서 아버지에게 카톡이 왔다. 어머니가 며칠째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담낭 쪽에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서 급히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갑자기 병원에 간 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수술이라니. 심지어 담낭을 곧장 떼어내야 하는 긴급한 수술이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의 설명만 듣고서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어 더욱 불안했다. 이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약 열흘 넘게 남은 일정을 모두 접어두고 곧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사카에서의 할 일들이 남아 있었고 단순히 여행으로만 온 일정은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 이곳에서 지내온 흐름이 있었기에 중간에 갑자기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온다고 해도 이 흐름은 깨질 것 같았다. 


당장에 어머니의 건강에 심각한 상황은 생기지 않아 우선은 두고 보기로 했다. 부모님께 나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으니 아버지께 상황을 자주 공유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부모님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오사카에 가서 책을 쓰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기에 괜찮다고 하셨다.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상황에서도 자녀에게 피해가 될까 하는 마음에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너무 답답했고 불안함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그 주 금요일, 오사카에서 나가던 한인교회에 나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울며 기도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고, 다행히도 어머니 역시 자신이 놓인 상황에 불안해하기보다는 담대하게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 같아 감사했다.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날 어머니는 바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틀 후 스탠트를 삽입하는 내과 시술을 먼저 진행했다. 동시에 그날은 나의 시라하마 일정의 첫날이었다. 시라하마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내 손과 눈은 가족 채팅방으로 향했다. 내과 시술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수면 마취에 약 1시간이 넘는 간단하지만은 않은 시술이었다. 다행히도 시술은 잘 끝났다. 그런데 입원하고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중에 새로운 소견이 나왔다. 염증이 너무 심해서 혹시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견이었다. 다시금 불안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중간중간 부모님과 통화도 나누고 수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과의사 친구인 B에게도 연락해서 상황을 공유하고 추가적인 설명을 들었다. 마침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친구 B는 상황을 듣더니 일단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암일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고 의견을 주었다. 그리고는 수술만 잘 되면 괜찮을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약 한 시간 남짓 예정되었던 3시의 수술은 4시가 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6시가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수술실 앞에서 수술실 현황 전광판만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어머니의 수술이 안전하게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 역시 초조해하는 아버지의 카톡을 보며 함께 초조해지던 시간이었다. 7시가 되었고 어머니의 수술도 안전하게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이 끝난 어머니는 통증으로 꽤나 힘들어하고 있다고 하셨고 내 마음도 너무나도 아팠다. 그러나 다행히도 수술은 잘 마무리된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어머니는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다. 어머니의 빠른 회복 덕분에 나도 다행히도 남은 일주일의 일정을 잘 보내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고 해서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수술하는 동안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은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주었던 아버지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 이야기가 한 달의 오사카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수술을 잘 견디고 회복한 어머니를 위해 이 한 면을 꼭 어머니의 수술 이야기로 채우고 싶었다. 어쩌면 미완성으로 끝났을 나의 오사카 한 달 살기는 감사하게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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