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한 달 살기 현실 후기 (7)
앞서 못다 한 한 달 살기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려 한다. 한 달 살기를 결정하고서 인터넷과 책을 통해 해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많이 찾아보았다. 흔히들 가장 먼저 하는 고민은 '어디에서 살 것인가'다. 보통은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곳이나, 혹은 이미 여행을 다녀온 곳 중에 마음에 들었던 곳을 한 달 살기 지역으로 정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나의 오사카 선택은 비교적 소박한 이유였다. 단순히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고, 친구가 그냥 한 달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한 말을 덜컥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오사카는 나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나의 해외여행 중 유일하게 여러 차례 방문했던 도시가 바로 오사카이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는 매번 처음 간다는 설렘이 있었지만, 오사카는 이미 네 차례 정도 여행으로 방문했던 도시였다. 그랬기에 매 방문마다 조금씩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며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랬던 도시에서 한 달간 살면서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일은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한 달 살기를 하며 지낼 거처를 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보통은 호텔 또는 레지던스 형식의 숙소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오사카에서 친구가 살고 있던 나로서는 별다른 선택사항이 없었다. 덕분에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지역은 오사카 지하철 갈색 선 '사카이스지 선'의 '에비스초 역' 근처였다. 이곳은 난바에서 동남쪽 방향에 위치한, 난바까지 걸어서 15~20분이면 가는 가까운 위치였다. 아래로는 '츠텐카쿠'가 있는 '신세카이'와, 조금 더 내려가면 '덴노지'라는 큰 상업지구가 있는 비교적 도심권이었다. 도심권이면서도 내가 지냈던 에비스초 인근은 주거 지역이라 그리 복잡하지 않고 관광객이 별로 없는 동네였다. 번화가에서 가까우면서도 번화가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는 동네라 좋았다. 숙소 인근에는 걸어서 3분 정도 이내에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고, 세븐일레븐 편의점도 하나 있어 늘 편리하게 이용했다. 가볍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숙소 주변 곳곳에 있어 이 점도 편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주는 여유도 큰 의미가 있었다. 보통 우리가 해외로 여행을 가면 짧게는 3~5일, 길어야 1~2주의 여행을 간다. 더욱이 대체로 여행은 기존에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주어진 시간 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여행에서 여유를 느끼기보다는 일정을 빠듯하게 소화하기 바쁘다. 그러나 한 달 살기를 하니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 다 못 보면 내일 또 올 수 있었고, 좋았던 것은 다음에 또 한 번 올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루의 일정을 보낼 때도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었다. 하나하나 느긋하게 음미하며 일과를 보냈다. 어차피 여기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다 여행이고 한 달 살기의 일환이기 때문이었다. 발길이 닿는 곳을 걷다가 갑자기 앉고 싶은 곳에서 앉고. 또 걷다가 사진을 찍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찍고. 나의 한 달 살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걷고 멈춰 서고 찍고 기록하고'였다.
별다른 정보 없이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잘 찾아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나는 주로 구글 지도와 구글 검색 기반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찾았다. 우선 구글 지도에는 각종 식당이나 관광지에 대한 평점이 나와 있다. 우선 평점의 개수로 그곳의 유명도를 파악할 수 있고, 평점의 높고 낮음으로 그곳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광고가 많이 붙는 네이버 평점과는 달리 구글 지도의 평점은 상대적으로는 광고가 덜 붙는 편이라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하다. 또한 새로운 곳에 가면 꼭 그곳에서 지도를 열어본다. 그럼 식당 외에도 그 지역의 가볼 만한 곳을 대략 스캔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그 지역의 공원이나 또는 문화시설 같은 것이 있는지 종종 찾아보고는 했다. 그렇게 찾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히메지 재즈 페스티벌'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히메지에 도착해서 지도를 찾다가 한 컨벤션 센터 건물을 보게 되었고, 그 센터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마침 그날 그 지역의 재즈 페스티벌 소식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국 블로그의 자료도 많이 찾아봤지만, 구글이나 야후재팬 등에서 검색되는 일본 현지인들의 여행 정보도 종종 검색하고는 했다. 일본어 검색이 쉽지는 않지만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어느 정도 가능하기도 하고 영어로 검색해도 한국어 검색보다는 많은 자료가 나온다. 또한 요즘은 크롬 웹브라우저에 자동 번역 기능도 있어서 일본어 사이트에 들어가서도 웬만한 내용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 'osaka 2024 festival'이라고 검색하면 월별 연간 일정이 쭉 정리된 자료들을 여럿 나오는데, 중간중간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osaka sakura'나 'kyoto sakura'라고 검색하면 우리에게는 다소 덜 알려진, 그러나 상대적으로 현지인들에게는 더 알려진 벚꽃 명소를 알아낼 수 있기도 했다. 기초적인 검색으로도 시작하면서 그렇게 웹서핑으로 타고 넘어가다 보면 국내 사이트에서는 검색하기 어려운 알짜 정보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시텐노지'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정보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다음은 복장. 나는 비교적 복장을 간결히 했다. 단벌신사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으로 간소화했다. 바지 세 벌, 티셔츠 세 벌, 셔츠 한 벌, 바람막이 하나, 신발 두 켤레와 샌들 한 켤레,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들고 다녔던 크로스백 하나가 전부였다. 써놓고 보니 그리 적은 건 또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4~5월이라는 계절적 특성도 있어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았고 특히 두꺼운 옷이 없어도 되어서 편했다. 더욱이 바지 세 벌과 티셔츠 세 벌에 셔츠 한 벌 정도가 있으면 꽤나 많은 조합이 가능해서 지루하지 않게 매일 다른 조합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가끔은 현지에서 쇼핑을 하기도 했다. 한 달 살기를 하며 옷을 쇼핑하는 일은 가급적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전부터 눈독 들였던 올블랙 디자인의 나이키 스니커즈 하나가 저렴하게 할인하는 것을 보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가끔 유니클로와 GU에 들르는 것도 늘 일상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일본에서나 구할 법한 디자인의 근사한 청자켓을 하나 건졌다. 이번 한 달 살기에서 쇼핑한 것은 이렇게 딱 두 가지였다.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친구들도 여럿 놀러 왔다. 가장 오래된 친구 J는 나의 오사카 한 달 살기 생활을 응원하러 갑작스럽게 출국 전날 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는 오사카에 왔다. J와 함께 세레소 오사카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도 하고, 그동안 오사카의 관광지 위주로만 다녔을 J에게 오사카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싶어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친구의 방문이 큰 힘이 되었을뿐더러 우리의 추억에 오사카라는 추억을 한 장 더 쌓을 수 있어 좋았다. 함께 지냈던 친구 B의 친구들 E와 Y도 오사카에 왔다. 나와도 잘 아는 친구들이었다. 늘 혼자 다녔던, 혹은 B와만 둘이 다녔던 여행이 E와 Y가 합류하니 넷이 되어 더욱 풍성해졌다. 식당에 가도 더 맛있는 것을 이것저것 주문할 수 있었고, B와 둘이서 가기에는 선뜻 망설여졌던 곳도 넷이 되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간 곳이 하루카스 300 전망대였다. 숙소 앞 놀이터에서 돗자리를 깔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간식을 먹었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있다.
다시 오사카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이번 한 달 살기에서는 못했던 아쉬운 것들이기도 하다. 하나는 라이브 재즈바에 가는 일이다. 특히 우리보다 밴드 문화가 앞서 있는 일본에서는 작은 재즈바나 클럽에서 작은 공연이 주말마다 열리고는 했다. 시간을 내어 한 번 가보려 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어 가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 하나는 농구나 배구 경기를 보는 일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나라, 만화 '하이큐'의 나라에서 농구나 배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꽤나 의미 있을 것 같다. 특히 세레소 오사카 축구 관람과 한신 타이거즈의 야구 관람을 통해 오사카 사람들의 스포츠 사랑을 여실히 느낀 바가 있었다. 여행지에서 관광객으로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은 기존 여행과는 전혀 다른 색다름을 준다. 마지막 하나는 메이드 카페를 한 번은 가보고 싶다. 사실 내 성격상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곳에 간다고 것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덴덴타운에 가득 들어서 있던 그 수많은 메이드 카페와 그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수많은 직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비주류일지언정 하나의 문화였다. 그 문화를 한 번은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한 번 더 오사카에 방문한다면 과연 그곳에 입장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 달 정도 오사카에 살았다고 하니 주변에서들 이제 오사카 전문가가 다 되었겠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농담이지만 괜한 부담감과 함께 어깨가 무거워진다. 더욱이 오사카 여행 에세이를 쓴 작가로서 더욱 그렇다. 한 달씩 오사카에서 지냈지만 오사카에 대해 뭐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사카를 많이 알고 적게 알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내 마음에 오사카에서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릴 수많은 사진과 이 한 권의 책이 남았으니 말이다. 한 달의 오사카는 내 인생 가장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