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두 병이 남긴 후회

나에게 쓰는 반성문

by 김에녹

너무 신나버린 게 화근이었다. 우리의 발걸음은 이미 GS25로 향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아까 봐두었다가 내려놓은 와인을 다시 골랐다. 경서와 나는 이미 신날 대로 신나 있었다. 무한도전을 보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한 병을 한 시간 만에 다 마셔버리고는 두 번째 와인을 사러 다시 나온 것이었다.


경서와 나는 나름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다. 우리의 욕구가 뭐 대단한 게 있겠냐마는, 통제해야 할 욕구 중 하나는 술에 대한 욕심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렇게 하라 해도 못 할 정도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술 생각이 났다. 시원한 기린 이치방 시보리 한 잔이나 향이 진한 와인 한 잔이 당길 때가 있었다. 그러나 곧잘 넘겨왔다. 어차피 술이라는 건 지나고 나면 대부분 안 마시길 잘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다음 날을 위해 대부분의 순간을 잘 참고 넘기는 편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이틀 내내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일정을 보내고 온 우리는, 온전히 우리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쩜 이렇게도 죽이 잘 맞는지. 우리는 눈빛 교환 몇 번만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요즘 편의점은 와인도 어쩜 이렇게 잘 나오는지. 그중에서 우리가 이전에 몇 번 마셔본 익숙한 와인을 골랐다. '디아블로 뭐라 뭐라' 되어 있는 와인이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와인에 우리는 선택을 신중히 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크가 있는 새로운 와인에 대한 도전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알던 와인을 마시자는 마음으로 디아블로를 골라 집으로 가져왔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무한도전을 틀어놓고는 함께 사온 얼음을 와인잔에 담아 와인을 홀짝거렸다. 바로 이 맛이지. 주중의 노고를 다 씻어내는, 주말 저녁의 달콤한 시간이다. 무한도전에 영 관심이 없던 경서는, 나 때문에 요즘 무한도전을 같이 봐준다. 이전에는 나 때문에 그저 곁에 앉아 보기만 하더니, 요즘엔 조금씩 스며들었단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무도의 세계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다. 나 역시 경서가 좋아하는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를, 경서로 인해 보기 시작했던 적이 있다. 경서를 위해서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 애니메이션은, 어느덧 시즌 3까지 다 봤던 기억이다.


두 번째 와인을 사 오고서 우리는 더욱 신났다.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당초 계획은 10시까지만 무한도전을 보며 와인을 마시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불타는 일요일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린 이미 신나 버렸고 그 흥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기어이 두 번째 와인 뚜껑을 열고야 말았다. 두 번째 와인이 반 병 정도 비어갈 때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취한 것이다. 취하지 않으려고 다짐했건만, 취해버렸다. 그렇게 틀어놓은 무한도전을 보는 둥 마는 둥 삼십여 분을 보냈다. 그러다 경서가 먼저 잠들었고, 나도 따라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시간부터 눈이 떠졌다. 아니, 정확히는 두세 시간 전부터 정신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상한 꿈과 함께 비몽사몽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입은 말라있었고, 어제 먹은 와인의 숙취가 코와 입을 향해 올라오는 듯했다.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였다. 후회. 왜 그렇게 마셔댔을까. 우리 규칙적인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우리 나름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욕구를 잘 통제하고 있었는데. 지난밤에 풀린 고삐는 그간의 습관을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절제란 이름으로 매일 쌓아올린 성벽인데, 무너지는건 언제나 한 순간이다.


이 글은 반성문이다. 다시는 술에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다짐이 찰랑거리는 술잔처럼 가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