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간판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며

by 김에녹

경주에 오고 나서 개척교회에 다니고 있다. 성도 수가 2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다. 처음엔 작은 교회라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목사님 부부를 따로 만나 뵙고는 그 걱정은 사라졌다. 흔히들 작은 교회에 간다 하면 맡겨지는 일이 많지 않을까, 행여나 나중에 교회를 나올 때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 교회에서는 그런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당장 내일 일이 있어 교회를 떠난다 하더라도 부담을 주지 않을, 그런 목사님 같았다.


목사님은 가끔 나에게 개인적으로 카톡을 보내시고는 한다.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내가 혼자서 심심하지는 않을까, 하고 보내시는 것 같다. 가끔 나와서 밥 먹으러 가자고도 불러 주시고, 차도 한 잔 하자고 하신다. 무슨 용건이 있어 부르시는 건 아닌 걸 알기에 부담이 없다. 그냥 편하게, 친구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목사님을 만나러 가고는 했다.


오늘도 목사님이 따로 연락을 주셨다. 이번엔 용건이 있었다. 교회 외벽 간판이 앞뒤로 있는데 거기에 거미줄을 떼야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목사님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건데, 그 밑에 사다리를 좀 붙잡아 달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성도 수가 얼마 안 되는 우리 교회는 더욱이 남자 성도가 별로 없다. 더욱이 남자 청년은 하나도 없다. 내가 이 교회의 유일한 남자 청년인 셈이다. 내일모레 사십을 맞이하지만 이 교회에선 젊은 청년으로 섬길 수 있다니 이 또한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다.


연락을 받고는 교회에 갔다. 평소에 교회를 오갈 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보니 교회 간판에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 교회가 강가에 있어 거미줄이 더 많이 생긴다고 했다.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경주에서 새로 구한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선 한강에나 가야 볼 수 있던 거미줄이 집 베란다 바깥에 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경서는 경악했다. 그런 거미줄을 작대기로 걷어내고 거미들을 쫓아내는 게, 이 집에 이사 와서 한동안 내가 했던 일이다.


목사님과 함께 3층 창고에서 사다리를 내렸다. 사다리 무게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혼자서는 들 수 없는 무게였다. 사다리를 쭉 펼치니 1층 반 정도는 올라갈 높이로 세워졌다. 그 사다리 위로 목사님이 올라가셨다. 안전 장비 없이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달리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 거라고는 사다리를 굳게 잡고 있는 수밖에, 그리고 목사님 옆에서 보조를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은 사다리 위에 올라앉으시더니 길이가 한 5미터 넘게 늘어나는, 솔이 달린 기다란 봉으로 간판에 붙어 있는 거미줄을 떼어내기 시작하셨다. 처음에 간판을 보고는 저걸 어떻게 다 떼내지, 했는데 목사님의 능수능란한 손기술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간판 사이사이 깊은 곳까지도 그 요술봉 같은 봉으로 쓱싹쓱싹 깨끗하게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내가 경주까지 내려와서 지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서울에서는 이런 일을 해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간판을 보며 살아왔지만 그 간판을 청소한다는 생각까지는 전혀 다다르지 못했으니까. 건물에 붙은 간판에는 거미줄이 많이 생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더욱이 내가 기존에 서울에서 다녔던 교회는 사례금을 받고 섬기는 직원분들이 있으셔서 이런 일들은 대체로 그분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개척교회에 다니고 있는 지금, 이런 일은 전부 목사님의 일이다. 그리고 그 목사님의 일을 돕는 게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한 시간 정도 예상되던 작업은 예상보다 빨리 끝나 40분 정도만에 끝났다.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간판은 목사님의 솔질 끝에 깨끗해졌다. 그 간판을 보니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깨끗해진 간판을 보니, 3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 간판을 처음 달았을 때 목사님이 느꼈을 감정도 상상하게 되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교회를 세웠을까. 어떤 성도들이 오기를 기대했을까. 나라는 사람이 올 줄은 몰랐겠지. 3년 전 이 간판이 세워지던 날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작업이 다 끝나고는 목사님은 교회 앞 백반 집에 나를 데려가셨다. 경주에 와서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는 불고기였다. 그 집이 맛있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역시 고된 노동 후 먹는 밥맛이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고된 노동이라기엔 고작 한 시간 일을 한 것뿐이지만.) 크게 도움이 되어 드린 것도 없는데 목사님은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잘 진행했다며 고마워하셨다.


이제 주일마다 교회에 갈 때마다 의식적으로 간판을 쳐다보게 될 것 같다. "저거 내가 함께 청소한 간판이야. 깨끗하지?" 라며 경서에게 몇 번이고 자랑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교회에 정을 붙여간다. 경주에서의 삶에도 적응해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