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도 선악이 있다면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이국적인 그림을 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역시 이러한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그림은 오시리스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적군이 쳐들어오기 직전 애첩과 애마들을 학살하여 자신의 재물들과 함께 불사름으로써 죽음을 맞이했다는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화려한 색감과 격렬한 운동감, 수많은 사물과 사람들로 어지럽게 배치되어있지만 난잡하지 않게 구성되어 꽉 찬 느낌이 드는 화면 배치는 왜 들라크루아를 낭만주의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술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는 명작이다.
한편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들라크루아의 작품으로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의 낭만주의적 특성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앞장선 자유의 여신이 발하는 환상적인 빛깔, 극적인 연출과 생생한 표정 등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놀라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현실의 사실성’이다. 머리로는 이것이 실제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예술, 특히 낭만주의 회화의 특성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혁명을 더없이 낭만적이고 극적인, 자유를 향한 민중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배고픔에 지친 난민들이 무기는커녕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부르주아들의 설득에 무작정 일으킨 봉기에 더 가깝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신은 물론 모자에 양복을 빼입고 총을 받쳐 든 화면 속 신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소리다. 현실을 왜곡하면서도 사실성을 부여하는, 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낭만주의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와 오리엔탈리즘
가만 보면, 낭만주의를 표방하고 동양의 그림을 그린 것 치고 폭력성이 배제된 것이 없다. 제목에는 꼭 납치, 죽음, 학살, 노예 같은 단어가 들어가거나 성적인 측면을 암시한다. 반면 서구 고대문명을 그린 작품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 학당> 등 철학적 지성을 뽐내기 바쁘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이 꽃피기 한참 전부터 파라오가 다스리던 이집트에서는 세계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가 세워졌고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동방을 동경하는 낭만주의 화가들을 필두로 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작품을 남기니 큰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착각하기 쉽다. 작품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의 모델인 사르다나팔루스 왕도 어쩌면 그런 이분법적 분류의 희생자일 수 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기원전 아시리아를 다스렸던 머나먼 시대의 왕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패배자인 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은 오로지 승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마지막 왕은 좋게 묘사된 적이 없다. 마지막 왕을 방탕하고 어리석은 군주로 그림으로써 나라의 멸망과 새로운 나라의 건국, 혹은 영토의 확장을 정당화하고자하는 승자의 노력 때문이다. 특히 고대 동양을 표상하는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는 여기에 덧붙여 오리엔탈리즘의 색채를 입고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동양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랬을까? 니네베를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의 각오를 다졌으나 자연재해로 실패한 왕의 마지막이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왜곡된 죽음과 유사한 사례로는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그녀는 흔히 콧대 높은 미인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녀의 외모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유능한 군주였다고 했다. 또한 서구 로마 제국에게 점령되기 직전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게 물려 자살했다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독사에게 물려 죽는 것은 그녀에게 마녀, 야만성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고,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강하다
누군가는 ‘그저 그림일 뿐이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림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텍스트이며 동양을 이미지화, 고정시키는 오리엔탈리즘의 목적에 크게 일조하는 매체이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사람들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동양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인상을 통일적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게다가 파급력이 더 높고 누구나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예술작품이다. 마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논문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격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다. 신비롭지만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묘사된 사르다나팔루스 왕은 동양 전체의 야만성을 대표하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폭력적이고 문란한 동양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설사 사르다나팔루스가 정말 방탕하고 독특했다 하더라도 그가 동양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동양에는 이 외에 현명한 왕들이 많았고 이슬람의 군주 중에도 지성을 사랑한 술탄이 많은데 구태여 사르다나팔루스를 고르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오스만제국의 기병대만 그리는 꼴이다.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조선시대의 숱한 임금 중에서도 연산군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아름답지만 틀린 그림
오늘날 사람들은 무슬림을 만나면 일방적으로 테러를 연상하고 그가 IS 등 테러조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이 같은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하면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의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사막에서 총칼을 들고 설치는 낙타 탄 야만인으로 간주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본인도 콕 집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무의식중에, 일종의 대전제로 동양에 대한 통일된 이미지이자 ‘사실’로써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동양의 강성했던 나라의 마지막을 어떠한 정황 설명도 없이 하나의 당연한 사실로써 그리면서, 동양의 호전성을 ‘비현실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낭만주의의 그림에서 그러했듯이 우리가 여기서 비현실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새삼스레 오리엔탈리즘이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불명확한 사실을 편파적으로 전달하면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불명확한 것을 명확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탁월한 그림인 것은 인정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치우친 방향으로 흔들어 인식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더욱 '옳지 않은'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