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을 받으려면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세상에는 골 때리는 예술가가 셀 수 없이 많다. 모든 걸 팽개치고 타히티로 떠나서 원주민들을 그리며 살다 죽은 인상파 고갱, 그런 고갱을 떠나보내기 싫어 커터칼로 위협하다가 제 귀를 잘라버린 고흐, 쇼맨십이 투철하여 팬티를 뒤집어쓴 채 사랑 고백을 했다는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굉장한 바람둥이에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다는 입체파 피카소 등등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천재 화가들은 괴짜였다. 이 괴짜들이 내 옆집에 살았다면 유명 화가고 뭐고 짜증부터 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제 3자의 입장에서야 지루한 미술 이론 가운데 재미난 뒷이야기거리를 제공해줘서 고맙다. 오늘은 바로 그 미술사 뒷이야기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괴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이다. 제목은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라고 한다. 오른쪽에 서 있는 후줄근한 옷차림에 몸집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화가 본인 귀스타브 쿠르베다. 잘 보면 이 아저씨, 고개를 치켜든 채 거만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신사는 그의 후원자 알프레드 브뤼야스이다. 모자를 벗어들고 인사를 먼저 건네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제목도 “안녕하세요 브뤼야스 씨”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이다. 그 뒤에서 고개를 정중히 숙여 목례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의 수행 하인인데, 하인이 쿠르베보다 옷차림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르베가 짓고 있는 저 거만한 미소는 이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을 암시한다. 쿠르베는 이 그림에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냥 ‘예술가’나 ‘화가’도 아니고 ‘천재’라는 소리다.
천재와 후원자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미술 시간이 아니므로 이론은 넘어가도록 하자. 자기중심적인 아웃사이더로 이름 높은 쿠르베는 위 그림과 제목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콧대가 높았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는 오로지 나 하나뿐이다.” 쿠르베의 이 한 마디면 그 수준을 충분히 알만도 하다. 1855년 만국박람회 미술전에 열네 점의 작품을 제출했다가 출품을 거부당하자, 박람회장이 떡하니 마주 보이는 건너편에 40여 점의 작품을 모아 자기 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게다가 만국박람회와 똑같은 입장료 1프랑을 받아서 자신의 개인전이 그 못지않은 수준임을 자부했다. 물론 결과는 쿠르베의 참패였다. 관객이 전혀 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반액으로 내렸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모이지 않았고, 쿠르베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콧대가 꺾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후일 그가 스스로 집필한 <쿠르베의 전기>에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나라의 수많은 미술관에 있는 최고의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을 그렸다”고 썼다니 말이다.
그런데 옆집에만 살아도 짜증났을 법한 이 콧대 높은 화가를 친구로 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림 속의 신사 알프레드 브뤼야스다. 쿠르베의 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그는 이 그림 외에도 쿠르베의 많은 작품 속에서 얼굴을 들이민다. ‘천재’에게 고개를 숙이는 ‘부’로 표현된 그는 쿠르베에게 은근히 비웃음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뤼야스는 자신의 친구를 끝까지 믿고 그의 그림에서 풍자 당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엇갈린 운명
당대의 사람들은 이상적 아름다움을 그리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쿠르베의 그림을 불편해 했다. 거기에 예술가 특유의 괴짜 기질과 오만함까지 가진 쿠르베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쿠르베 자신은 타자를 잘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만을 프랑스에서 중요한 화가로 칭한 것처럼 그는 타인의 경의는 받아도 타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프랑스 사회가 그를 아니꼽게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쿠르베 본인이 낭만주의 사조를 비롯한 당대 미술계 전체를 더욱 업신여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년은 파란만장했던 그의 일생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쿠르베는 나폴레옹 정부에게 미움을 사서 전 재산과 그림을 몰수당하고 스위스로 망명을 떠난 뒤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그에 비해 브뤼야스는 너무도 다른 쿠르베를 인정할 줄 알았다. 타인에게 먼저 모자를 벗고 인사할 줄 알았으며 오만한 천재의 자부심에 관대했다. 도대체 어떤 후원자가 그림 속에서 권위 있고 위엄 넘치는 모습을 뽐내지는 못할지언정 화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겠는가. 실제로 브뤼야스는 쿠르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으면서도 그에게 제대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다릴 줄 알았고, 먼저 경의를 나타낼 줄 알았다. 쿠르베의 그림에서는 ‘부(富)’라는 한 마디로 정의되면서 평가 절하되었지만, 브뤼야스는 오히려 겸손에 가까웠던 듯하다. 덕분에 그는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맞았다. 당시에는 무시당했지만 오늘날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쿠르베의 많은 그림 속에 얼굴을 남겨 200년 뒤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말이다. 만일 그가 그저 살롱의 돈 많은 예술 애호가로 남았다면 이런 미래를 맞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라는 그 어려운 말
다른 사람과 마주할 때, 기억해야 될 것은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개 숙이기 싫고,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은, 그야말로 나같은 사람. 쿠르베는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경의를 표할 줄 모르는 외로운 천재로 남았고, 브뤼야스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그림 속 신사로 남았다. 쿠르베는 평생을 자부심 속에 살았지만 그 자부심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에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먼 후대에야 인정받았다. 쿠르베는 존경을 받아도 그에 상응하는 존경을 표하지 않았지만, 결국 브뤼야스의 존경은 돌고 돌아 먼 후대에 ‘천재 화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유일한 친구’라는 명예로 되돌아 왔다.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흔히 말한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내가 좋은 일은 남에게 먼저 시켜야 할 것이다. 사랑의 연대는 위태롭고, 타인에 대한 기다림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비해 너무 느리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 닿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타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천재이기 보다는 천재의 친구가 되자. 천재, 혹은 나와 전혀 다른 타자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먼저 타인을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표현한 존경이 바로 되갚아지지는 않아도 인다라의 그물망을 따라 먼 길을 돌아서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인정을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인정해야 하는 법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오만한 천재보다 겸손한 범재를 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