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함께하던 곳을 떠나올 때였다. 이십 대 절반 이상을 보낼 정도로 정들었던 곳이었기에 좋았던 기억만 생각나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아쉽고 아프기만 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몸을 담았던 곳의 문제로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급히 정리하고 빠져나와야만 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타지 생활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낯설었던 '공동체 바깥세상'에서의 삶은 해가 넘어가면서 시작되었다. 어리석게도 금방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몇 년 동안 물들다 못해 박혀버린 습관은 이미 나에게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마치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이 중간에 끊겨버린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인데, 정작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밤마다 무서운 상상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육 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저는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드디어 저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있던 나, 그곳에서 이름 대신 불려지던 어떤 직책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생각하고, 느껴보고, 사랑해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니 별 이룬 것도 없지만 당시엔 바보처럼 살고 싶진 않아서 뭐든 열심히 하며 앞만 보고 살아왔었으므로.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넌 뭘 좋아하니?라는 간단한 질문부터 살면서 평생 하고 싶은 일이 있니?라는 나름 괜찮은 주제까지 던져보았다. 아직 명확히 얻은 답은 없다. 하나 찾았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답을 찾고 찾다가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다 보니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기억을 찾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찾은 답은 내가 던진 질문과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묻던 물음으로 타인에게도 묻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이 다. 가끔 노곤할 때면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마냥 쳐다보기가 취미이긴 했지만, 내 앞의 사람에게 물어보진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묻기 시작했다. 대답이 바로 돌아오진 않았다. 원래 마음의 소리라는 게 쉽지가 않으므로. 장을 묻어두듯이 오랜 시간 묵혀둬야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는 사람의 직관 같은 거니까.
마침내 어느 날 기다리던 영감이 떠올랐다. '사람은 아름답다, 누구나' 다. 그제야 떠나온 공동체를 생각할 때마다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눈물 젖은 마음으로 바라보던 내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상치 못한 인생의 전개에 차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곳이 영원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인양, 그것만이 저의 전부인양 생각했던 까닭이다. 헤어짐의 그날, 제 삶이 멈추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밖에도 인생은 있고, 북적거리는 인생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조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저의 시간은 멈추었던 게 아니라, B.C. 와 A.D.로 나뉘었던 건데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바깥 생활'이 익숙해지고 정이 들고, 이 곳이 익숙해지자 일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겨 스스로를 조이며 살던 지난날 동안 항상 시달리던 편두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질문도 던질 수 있었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뭘까? 하고. 그리고 나름의 답을 내보았다. 나는 행복은 각자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좇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단순히 '미(美)'를 사람의 외관이나 어떤 재능으로 지칭하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아름다운 행동,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생각이 내가 나온 '바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했던, 접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말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흔들리고 깨졌을 때 우리는 보통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았어도 당신을 설명해주고, 세상을 당신에게 설명해주는 기준이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한 때 속해있던 '것'이 허물어졌을 뿐이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는 까닭이다.
다시금 자신이 느낄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마주할 행복으로, 잃었다고 생각했던 행복과 지난날의 실망과 실의라는 어둠이 그리움과 간절한 소망으로 바뀔 거라는 기대를 잃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픔만 어디에나 있지 않다. 우리 각자를 품어 줄 아름다움도 어디에나 있다. 마치 길이 어딘가에 그리고 어디나 있는 것처럼. 길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듯이,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양갈래 길 사이로 누군가 걸어가는 것을 보게될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