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신 지불하다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가 지나갑니다. 왠지 모를 다행을 느끼는 이유는 그저 두어도 끝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가고 사그라들 지난 하루, 지난 주말, 지난달. 언젠가는 세월의 무게와 시간의 흐름에 눌리고 휩쓸려 사라질 겁니다. 시간은 때때로 무력감을 낳지만 무력감은 다시 시간에 기대야만 치유되는 그런 순환이 계속되는 까닭일 겁니다. 자연스레 다른 곳, 다른 시간을 기대하게 되는 인간의 다행스러운 버릇입니다.
해를 넘긴다는 표현도 즐겨 씁니다. 저무는, 지나가는, 과 다르게 마치 규격이 '정해진 담'을 넘듯 '넘어가는'에는 힘이 실립니다. 낮은 담이든 높은 담이든 넘어야 하는 데는 넘겨야만 하는 임계점의 힘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한 해는 저절로 끝을 맞이하지 않고 매듭지어 줄 사람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덕분에 각자 나름의 기념으로 오늘과 내일이 완전 다른 곳에 속한다는 특별한 구분을 매 해 마지막 날 경험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점점 필요한 힘은 커지는 듯합니다. 커튼을 젖혀내는 힘, 오르막길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내는 힘, 막장을 뚫는 힘. 점점 굵어지고 깊어지는 크기입니다.
얼마만큼 힘을 써야 하든, 마지막 날을 코 앞에 두었습니다. 이 날이 지나면 좀 더 나은 곳, 나은 시간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간절합니다.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들에도 행복이 깃드는 그런 시간과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해결되지 못한 아픔과 갈등이 걱정스러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마음들은 마땅한 보상을 요구했고 불가항력의 사건 앞에 무릎을 꿇었던 이들이 진실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절망만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반복과 감춰진 적폐 사이의 관련성이 밝혀지지 페달을 밟던 힘, 커튼을 열던 작은 힘들이 모여들었을 뿐입니다. 빼앗겼던 더 중요한 것을 되찾으려 무뎌졌던 마음들을 추슬렀을 뿐이지 갈등과 아픔을 함께 해결하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사람'을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타인이 지지 않고 전가한 책임 때문에 대신 괴로워야만 했던, 의지가 꺾인 채 양심을 팔아야만 생물학적 목숨을 보전할 수밖에 없는, 그저 나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나'가 지워져야만 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말해 무엇하겠냐는 마땅한 것이지만 길어지는 결정의 시국에 무너지고 흔들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세울 남겨진 힘이 있을지 조심스럽고 두려운 상황입니다.
광장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사회의 전반부에 관심을 잃지 않던 이들은 자신들의 '열심'이 보상을 줄 거라는 희망과 믿음으로 시간, 곧 생명을 지불했습니다. 그 보상은 이전처럼 타인의 노력을 갈취하여 얻을 무언가가 아니라 차라리 전당포에서 얻는 빚에 가깝다는 생각에도 말입니다.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무임승차는 없어야 한다 보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날 무임승차가 용인되었든 가능했든 '승차'를 받아주었던 역사일 뿐 '무임'을 권하거나, 무임을 승차에 정당한 방법이라 격상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생각했던 겁니다.
희망을 용기 내어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져야 할 시기입니다. 공인에 대한 단순한 분노로 쏟은 관심이 자신의 과거가 무임승차였을지 모른다는, 주권자의 부채의식으로 이어져 주말의 '지불 행렬'을 만들어 냈듯이 말입니다.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대신 지불해주는 이 행위는 자신도 모르게 빚으로 살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입니다. 자신의 작은 의지가 이름 모를 이들의 우려마저 거둘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이어지고 마침내 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는 희망 가득한 기적이 많은 내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