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전야

그날도 어두운 밤으로 시작했다

by 쓴쓴

오늘처럼 무기력에 익숙해진 크리스마스는 다시 없을 거라 믿고 싶었다. 들었던 목소리만으로는 가끔 마음을 터놓을 것만 같은 라디오의 그 사람은, 걱정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준다. '한 달 후엔 이런 일 따윈 생각하고 있질 않겠지, 뭐. 그럼 조금 편해져요'. 그럴듯한 이야기에 솔깃했던 나의 귀를 슬그머니 덮는 의심의 손길은, 한 때 고요하고 거룩했던 밤이었던 성탄을 추억하는 미소가 사라져갈 즘에 자각과 함께 그렇게 찾아왔다.



씁쓸한 손에 쥐어진 모바일은 또다른 불야성이다. 도시의 불빛보다 때론 더 환하게 어두컴컴한 마음을 비출듯이 손바닥을 하늘 삼아 내려다보는 휴대폰의 푸른 빛. 끊기지 않는 세계 너머의 세상은 나를 구원해줄듯 하지만 그마저도 - 누군가의 포스팅을 보다가 -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까 싶었다.




탈경계의 세상. 관념과 물질의 구분이 사라지는 시대라는 의미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대부분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인간의 역사에서 막상 새롭지 않은 반복일 뿐, 미래를 앞두고 있다는 슬로건의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의 실존은 밀려나 누군가의 환호와 어디선가의 울음으로 더 극명하게 나뉘는 위협을 받는다. 그렇게 성탄의 날에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 생각해보다가 이 무슨 사치스러운 뫼비우스, 애절한 순환고리인가 싶었다.


손 안의 불야성이 잠재우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 중에서 간혹 나만의 어둠이 아니라는 갑작스런 위로를 만나기도 한다. 무심히 읽던 책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발견하고 우연히 따라 부르던 가사에 빠져 인생노래를 만나며 발걸음을 돌이킨 길목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는듯한 기분. 보잘 것 없는 인생에 개입한, 그렇다고 믿고 싶은 기적.




성탄전야. 어느날과 다름 없이 밤으로 시작했던 성탄의 날.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예수가 탄생했던 밤도 해가 없던 어둠이었다. 그 날이라 해도 과연 밤과 낮은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부정(더러운)한 자들이라 손가락질 받았기에 마을의 환한 빛과 멀리 떨어져야만 했던 자들. 밤을 깨워 돌아가며 양을 지키느라 추위에 떨었을 목자들은 그 날의 밤만은 여느 때처럼 어둡지만은 않은 밤이라 느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달린 별보다 더 높은 하늘에서 비추는 별빛. 하얀 양털에 반사된 빛에 부신 눈을 찡그리다가 그들에게 전해져오던 신의 약속이 담긴 이야기를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기적이 우릴 찾아왔다 믿고 싶은 기분. 다른 때의 밤처럼 어두웠던 그날. 불빛도 온기도 충분치 않은 곳에서 신이 인간이 되어, 어두운 인간의 마음을 비추고 인간의 가치를 빛내던 그날도 밤으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