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간다면
2017.02.28
우리는 과학을 다룬 영화들에 요즘 꽤 관심을 주곤 한다. 제작사들도 인기를 예측하는지 외연을 확장시킨 영화를 내놓는다. 최근 '문과를 위한 SF영화'라고 회자되며 개봉한 <컨택트>는 인문학 영역에서 심도 있게 풀어내면서 좋은 평도 받았다.
어느 영화나 기본적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비록 현실세계가 담아내지 못할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체라 한들 개연성을 지닌 여러 설정이 심긴다. 덕분에 인문학은 새로운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장르가 판타지라 할지라도 우리의 것과 닮은 세계의 소식들은 관람객들을 충분히 납득시켜 감동과 교훈, 그리고 의문을 뿜어낸다.
판타지는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세계 밖에서 세상 안을 들여보게 돕는다. 마치 그곳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고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찾게 한다. 과학영화는 아마도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는 듯하다.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히 담아내기 현실성을 높여 자연스레 관람객이 깊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오십보백보라지만 판타지에 비해 덜 도망간 상태로 시뮬레이션을 조심스레 즐기는 셈이다.
<컨택트>가 호평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가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다가 올 일을 다 알고 있어도 우린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 모두를 맞으러 나오는 미래를 나만 홀로 만나러 가야 한다면, 과연 그 앞 선 것들을 품어낼 수 있을까. 삶의 행복에서 자유의지의 문제까지 이끌어낸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기대한다. 과학으로 현실을 다루는 영화는 어느 때의 매체보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묘사할 것이라고, 더 세세하게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우리를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필자는 시간을 거슬러 좀 더 이전의 영화를 회상해보자 한다. <인터스텔라>는 <컨택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만큼 호불호도 많이 갈렸다. 혹평을 쏟아냈던 리뷰 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이라는 거잖아. 이것도 신파네."
(이건 사족이지만 잠깐 변호하려 한다. '인터스텔라'는 항성 간의 거리를 뜻하는 아주 먼 거리를 뜻한다. 고작 한 아버지의 사랑일지 모르나 우리는 그것으로 한 가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인류는 그들이 이전엔 닿지 못한 아주 먼 곳, 우주 어디에서라도 사랑을 심고, 품고, 전하는 존재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 의미를 앞에 두고 필자는 비판을 간과할 수 없었다.)
필자는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았던 '사건의 지평선'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블랙홀을 기억할 것이다. 이 지평선은 블랙홀에서 볼 수 있는데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어떠한 물질과 에너지도, 그러니 심지어 빛조차 들어가기만 하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은 중력이 높아서 외부에서는 들어갈 수 있으나 어느 정보도 빠져나오지 않기에 '사건'의 지평선이라 불린다.
이 너머를 보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다. 그곳으로 가는 것. 하지만 본다는 행위는 의미 없는 일이다. 벌써 죽음을 맞이했을 테니까. 관찰자 또한 지평선을 맞이한 것이다. '특이점'은 그렇게 온다. 중력이 최대치로 높아져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상태. 어떤 기준도 적용되지 않는 그 지점은 넘어가는 게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곳이다.
우리는 어떤 시점을 전후로 특이한 경험을 겪곤 한다. 시선이라 불리 만한 무언가가 바뀐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마음을 흔들어 바닥이라 할 만한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을 향해, 저 아래로 마음을 내팽겨 세계 밖으로 쳐낸다. 애매하게 서성이거나 떠돌거나 맴돈다. 어쩌면 스스로 자른 것일지도 모르는, 뿌리가 없는 상태로 부유한다. 그런 까닭에 사방으로 안테나를 뻗는다. 수경 재배하는 식물의 뿌리처럼 힘껏.
솔직한 누군가가 어느 순간 필자에게 말해 주었다. 많이 변해서 놀랐다고. 곧이어 필자도 놀랐다. 나에게 '나'는 항상 나였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것만 달랐다. 내 세계가 부서졌고 그래서 무작정 앞으로 걷다 이내 가만히 멈춰 무너지지 않으려는 시기를 보낸다는 아픔이 있다. 더 자주 부정하고 저항하게 된 본인을 행복하다고 칭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덕분에 더 공감할 줄 알게 된 낯선 모습이 대견하긴 했다. 이전보다 스스로와 더 어울리는 것 같은 현 상태를 겨우 지켜보는 중이랄까.
한동안 과거의 세계를 어설피 쳐내고 지금의 시선과 분리해 갈라내는데 몰두했다. 어느 정도 되었다 생각하니 삶을 전후로 나눈 최근의 특이점 이전이 간혹 떠오른다. 불투명한 광경에서 새로이 자라난 과거의 다른 모습을 보며 어색하다. 낯선 시선으로 익숙한 일기장을 보듯 필자는 버려두던 어제의 시간들을 그제야 조금 붙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전 버린 기대감은 그렇게 찾아왔다.
이게 이유였을지는 모르지만 본인은 이해 불가한 사건 너머로 무너져 내려 '왔다'. 넘어오려고 특이점을 겪었던 걸까 싶었다. 비록 조악하지만 이 설명만이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듯했다. 여전히 고통을 겪으면서도 알지 못한 존재를 향해 공감을 표현하고 본인과 같은 존재들의 세계를 위해 소심하게나마 저항하는, 이상한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2018.06.29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이상한 자신을 발견하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중이다. 이해할 수 없이 나를 늘어지게 만들던 우울증이라는 중력을 깨달았기에 나는 새로운 통찰에 이르렀다.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매일을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이제 완전한 이행기에 접어들었다. 이전처럼 타인의 시선에만 나를 맞추어 '착한' 사람이 되려던 인간이 아니라 '나다운' 사람이 되는 새로운 틀을 세우고 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처음 들어서는 웜홀(블랙홀이 만든, 우주의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시킨 구멍)이고, 터널이다.
두렵고 불쾌하다. 위기감이 들고 배가 아파온다. 그러다 스르르 낮잠이 온다. 더이상은 기다리기 싫다. 하지만 들어선 이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돌아갈 수 없으니 전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