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을 잡아 중간을 폈을 때, 당혹스러운 감동을 느꼈다. 이 책이 시집이었다니. 그 감탄만으로도 이미 내면에 어떠한 파동이 일었다.
공정한 평가를 생각해 책 소개를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이 책은 열여섯 개로 나뉜 장으로 이루어진 '시 모음집'이다. 지은이는 정해진 각 주제마다 어울리는 시를 골라 배치했고 자신의 생각을 짤막한 해설로 곁들였다. 통일성을 극대화하고자 시 중간만을 떼어서 실기도 했고, 널리 알려진 기존 이해와는 다른 결의 해석을 내리는, 조금 다른 의미의 시적 허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만일 시와 홀로 대면하는 독서에 능한 이들은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고 불만을 표할 것이다. 저자가 시의 본질을 해치며 끼어드는 곁가지 역할을 자처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바로 그 '허용'을 노렸던 게 아닌가 싶었다. 필자는 그 이유를 각 장이 시작되는 지점마다 나타나는 두세 장의 설명문에서 찾았다.
저자는 그의 표현대로, "주관적 지옥"을 사는 이들에게 시가 허락하는 자유로운 방황, 목숨를 살리는 해방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주제별로 묶은 시 덩어리를 던져주었던 게 아니라, 시를 매개체로 고통받는 마음들을 이어보려 시도했던 것이다.
사실 시는 그런 것이다. 시인의 생각과는 다른 감정을 읽게 한다. 시에는 그렇게 재창조하는 특성이 있다. 한정된 단어와 고집스러운 시인만의 표현이 도리어 나에게만 보이는 세계를 선사한다. 착각과 오해로 현실에 갇힌 본인의 사고가 확장되면서 감춰졌던 이면이 드러난다.
어쩌면 그것이 시의 운명이다. 시인은 독자가 내보일 자의적 해석을 감수하고 자신이 본 세상을 조심히, 그러나 분명히 내보이기로 작정한다. 실루엣처럼 비치는 단어의 장막만을 두고,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여기 있다'라고 말해 준다.
투과된 빛처럼 책 전반에 걸쳐 잔잔한 위로가 흐른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넌 홀로 있지 않다. 너처럼 힘든 우리, 너처럼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우리가 있다'고.
독자들은 책 속에서 하나의 선을 마주할 것이다. 일종의 '도'이다. '도를 넘었다' 할 때 그 도. 책은 선을 밟으며 걷지만 선을 넘지 않은 채로 시를 읽게 돕는다. 시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세계를 보는 이는 그곳에서 선을 넘어버린 것 같은 대상을 향하여 대신 나무라 주는 시를 만난다.
또한 이 선은 하나의 경계다. 정확한 무엇은 없지만, 지옥과 같은 현실 너머에 꿈꾸던 세계가 있다면 아마 그 세계의 경계를 시에서 만날 것이다. 혹시라도 현실에서 자신이 이탈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인이, 혹은 화자가 대신 외쳐주고 있어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귀한 사람이야. 네 잘못만이 아니야. 어쩌면 이 외침은 한 때 들려왔던 내면의 속삭임을 수도 있다. 저마다 소리 높이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기적이지 않으려하던 착한 마음들에게만 들리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