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이해의 척도를 넘어서
성취에는 고통이 반드시,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성공할 만큼 넉넉히 있어야 한다는 말은 시대의 의견이자 과거의 변명이다. 먼 태고에, 그러니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오래전 인류는 검은 하늘에 맺힌 번개와 지축을 흔드는 천둥을 신의 분노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통과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고통의 원인을 영영히 없앨 수 있을 거라든지 삶의 무게에 어떠한 의미도 남기지 않게 되리라는, 발전된 의학의 혹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사회를 그려보자는 게 아니다. 위장을 쥐어짜는 통각마저 성공과 성취의 재료로 이해하려는 이 시대의 풍조를 비판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고통과 사회의 아픔을 공유하여 현재의 것으로 다루지 않음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속지 않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넉넉한 고통이란 없다.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아픔을 참을 마땅한 동기는 없다. 닦일 얼룩은 씻고 흉터 지지 않을 상처는 세심히 다룬다. 먹지 않을, 무성히 자라날 텃밭의 다른 풀들은 뽑아내면 된다. 고통은 무엇의 충분조건일지 모르나 필수조건일 수는 없다. 그러니 강요하지 마시라. 새 술에는 새 부대가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