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난 만남을 추억하며
사람은 언제 자신의 생각을 바꿔 보려고 할까. 그것은 타인의 말이 마음에 울릴 때다. 당신과의 대화가 동어반복이 아니며 자아의 확장이나 확신이 아니고 일방적인 습득이나 정보전달이 아닐 때, 생각이 부딪히고 조금은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 때, 화자와는 관계없이 맥락에서 전해지는 말 자체의 설득력에 감화된다.
책이 종종 그런 일을 벌인다. 시간을 뛰어넘어 몇 백 년 전의 사람이 나에게 묻곤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신문이든 광고문이든, 기록된 모든 활자는 운동력을 지닌다. 스쳐 지나가는 눈길 하나에 생명을 얻은 그것은 현재의 아픔과 과거의 지혜를 속삭인다.
이렇듯 친구가 되기에는 살아온 세월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고 사랑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려면 어제 태어났다 생각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오래 살았다 생각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매일 친구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사랑하기 위해 우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작은 기적을 기다리는 마음을 욕심으로 취급하면 희망은 비현실적인 사람들의 미련한 자기 위로가 되고 만다. 조그만 욕심의 성취를 하늘의 점지로 이해한다면 소망 하나 정도는 쉽게 짓밟는다. 그러나 행복은 자주 비현실적인 소망이 되곤 했다.
이런 말을 크게 해보았던 적은 없었다. '행복하고 싶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행복하고 싶다고 그랬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의 행복도 빌어주지 그래?' 아니, 난 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 내 마음은 누구 행복을 빌어줄 정도로 부유하지 않다고. 그러고서, 뚱한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울었다. 그래도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누구 먼저 누구의 행복을 빌어주기 전에, 누구 덕택에 내가 더 불행하다고 자랑하기 전에 같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듯이.
그것이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일 것이라 추측해보곤 했다. 그러면 항상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군가가 먼저 행복해져 버리면 반드시 곧장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