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편견

나답게 산다는 결심이 또 다른 모방일지라도

by 쓴쓴

일교차가 크게 벌어진 날이었다. 오후로 넘어가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산책을 조금 멀리 나섰고 다시 걸어올 길이 막막해졌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예정대로 카페에 당당히 입성했다. 생각보다 더웠다는 것만 빼고는 계획대로였다. 카페의 공기는 시원했고 사람은 적당히 많았다.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한 후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조금 눅눅한 느낌이 묻어났다. 에어컨이 청소가 덜 되었거니 하고 자리를 옮겼는데도 예민한 코가 여전히 성을 냈다. 그래서 눈이 함께 정찰에 나섰다. 나의 꿀맛 같은 휴식을 방해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두 명의 후보가 있었다. 양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땀을 좀 많이 흘린 듯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에어컨 바람이 오는 자리에 앉았을 터였다. 그 탓에 눅눅한 냄새를 맡았던 거였지만, 누굴 탓하고 싶진 않았다. 날은 너무 더웠고, 나도 땀을 흘렸으니 말이다. 다만 냄새의 출처에 확신을 가진 순간, 나의 편견과 그 사람의 예의 없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 여기서 잠깐 문제를 내겠다. 땀 냄새를 흘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떠올려보라. 나는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땀을 흘렸다는 사실을 눈치챌 정도로, 예의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점만 공유했다. 누가 떠오르는가? 누가 떠오르든 그것은 우리가 각자가 지닌 고정관념이다. 답은 알려주지 않겠다. 그 사람이 누구든, 사회적 관습을 조금 어겼다(신발을 벗었다)고 글로 고발당할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누구를 상상했든 당신은 틀렸을 거다. 왜냐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당신은 다시 두 번째 편견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가지러 간 사이에 벗었던 신발을 신고 그분은 자리를 비웠다. 독서에 열중하면서 커피잔을 들었는데, 채 두 모금을 넘기기도 전에 다른 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어라? 눈에 많이 익은 분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데도 머리는 계속 그 얼굴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뻐근해진 고개를 돌리고 컵을 내리는데 뇌가 검색에 성공했다. 집 앞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아무튼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책에 더 눈이 갔다. '소설 작법 12강'이었나, 이름은 정확하지 않았다. 동일한 관심 분야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심지어 집 앞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작가 지망생이었다니! 아 물론, 이것도 나의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소설 작법 책을 대놓고 펼쳐놓겠는가. 물론 문창과 학생의 단순한 과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가운 건 반가운 거였다. 나의 편견이 맞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속으로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혹시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을 아는지 모르겠다. 정신분석학자인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긴 하지만, 그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사상을 해석한 이로 유명하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주장이다.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는데 심오하다. 무슨 뜻인지 대충 감이 잡히는가? 결국 인간은 주체적으로 욕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모방할 뿐이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욕망하며 산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고백을 잠깐 하자면, 나는 항상 부모님께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별히 공부에서 말이다. 어렸을 적 공부방에 가기 싫어도 삼 년을 내리 꾹 참았던 것처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서야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오랜 기간을 참았다가 감정을 터트리는 데 익숙다. 즉 부모님의 욕망, 즉 착하고 똑똑한 아이를 원하는 욕망을 나 자신에게 투영시키는 굴레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질 못했다.


얼마 전에 보조배터리를, 왕복 40분이 넘게 걸리는 카페에 두고 왔었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엄마에게 요거트를 사드리지 않았더라면, 운동 삼아 같이 걸어 찾으러 다녀오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저녁을 먹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나빠진 기분으로 집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를 찾아온 엄마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일부로 전화를 피하다가 늦게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결국 나는 어릴 적 모습처럼 주저앉아 울었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배터리를 놓고 오지 않았더라면 부모님께 솔직해질 기회도 얻지 못했을 거다. 과정과 결과 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 시절 방식과 똑같긴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깨달음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그것이 나의 진정한, 최고의 욕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절망과 희망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인물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건을 그려낸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바로 지금 나의 욕망은 그것이다. 그만큼은 부모님의 욕망에서 벗어났다고 자부하고 싶다.




스캇 펙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삶의 여러 가지 구부러진 길과 모퉁이와 타협할 때는 계속해서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포기 대신 유일한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아예 그만두는 일이다." 그는 딸아이와 체스를 두다가 자신의 승부욕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좋은 부모가 되려면 내가 아직 그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을 접하며, 나는 좋은 자식이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나를 좋게 보는 모든 기준과 표준은 내가 세운 것이 아니다. 삶의 굴곡진 곳에서 마주한 비판적 질문에도 꿈쩍하지 않고, 위(부모님)로부터 내려온 규칙과 규범을 충실히 따르려던 나는, 결국 스스로의 답도 내리지 못한 마음이 텅 빈 사람이 되었다. 스캇 펙은 그것을 건강한 우울증이라 명명했다. 내가 사랑하고 의존했던 자아상을 무의식이 의식보다 먼저 포기했기에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예견했다.


나를 포기하는 과정은 주입된 편견을 발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지우고 새로운 자아상으로 대체하는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솔직 남의 욕망에 맞춰 나를 좋게 보이려는 내 행동을 볼 때마다 지긋지긋하다고 느낀다. 알기 전엔 몰랐는데 차라리 그래서 영영 몰랐으면 하지만, 시작된 자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엄청난 무엇을 알아차린 것도 아니라서 스스로가 우스웠던 적이 많다. 그래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몽땅 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은 스캇 펙이 말했듯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우는 것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그러한 책 속의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 고통을 이겨내라고 한다. 그것이 너를 성장시킬 거라는 판에 박힌 소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설득된다. 세상의 누구보다 다정히 다가오는 그 진심이 나를 움직인다. 정말로 내가 어쩌면 건강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그가 묘사했듯이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린 사람이 바로 나라고 또 다른 편견을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이 끝없는 의심과 성찰이여! 그러나 스캇도 인생은 멈추지 않는 성찰로 이루어져있댔다).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면 내가 찬란한 무언가를 손에 얻었다고 느낄 때다. 이 놀라운 지혜를, 이처럼 고귀한 지식을 어쩌다 손에 쥐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기쁠 때, 고양된 나의 감정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을 때, 자중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첫눈에 반했다는 감정과 같아서 사실 아무 실체도 없는 상태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눈이 조금 삐었을 뿐, 달라진 건 아직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라는, 곧 내게 주입된 자아상과 편견을 버리라는 스캇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실행'만 하면 돼)에 인생을 살짝 얹어보기로 했다. 라캉의 말처럼 결국 내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면, 나에게 맞는 욕망을 모방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맞는 모델을 찾게 되고 결국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겠지.


너무 많은 편견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너무 많은 모방으로 타인을 선망하지 않기로, 나답게 성장하자고 마음먹는다(고 또 다른 편견과 모방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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