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선물

너는 나에게 그런 의미야

by 쓴쓴

안장에 앉아 페달을 굴리면 땅이 얼마나 경사졌는지 쉽게 알아챈다. 오르막길에 땅겨진 허벅지가 뜨거워지고 어느새 얼굴이 벌게져 기울어진 길을 마침내 실감한다. 걸을 땐 몰랐던 이 약간의 경사는 한참을 밟아야 넘겨 서고, 막간에 잔잔한 내리막을 만난다.




자세가 조금만 바뀌어도, 방식만 달리 선택해도 세상의 모습은 달라진다. 그러니 졸업한 지 십 년도 더 지난 초등학교의 체육복을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히 보았다면 그 감상은 어떠했을까.


검은 바탕에 노란 띠로 강조한, 통풍이 심하게 되던 겨울 체육복. 글쎄 많이 무뎌졌구나, 싶었다. 왕따를 당했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 기억은 웬일인지 이날만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떠올랐다. 다만 차가운 바람이 유독 불던 날, 체육복을 입은 아이를 위해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남모르게 빌어주었다. 너에겐 네 마음을 나눌 친구가 꼭 있기를 바랄게(거 봐, 못 잊었어. 무뎌진 건 감정이 아니라 기억인가 봐).




최근에 버스킹을 하는 분을 대학원에서 만났다. 사람은 길게 두고 봐야 한다고, 스스로 밝히시기 전까진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나중에서야 보컬 담당이라는 사실에, 맙소사 나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싶었다. 큰 몸집에서만 노래가 잘 나올 줄 알았는데. 어떤 음색이 나올까, 그게 너무 궁금했다.


그러던 도중에 그분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언덕을 오르다가 적막한 공기를 가르는 얇은 탁성을 들었다. 평소 걸음이 빠른 나는 일부로 속도를 늦췄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았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의도치 않은 기회 덕분에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알지 못하는 노래였지만, 인상 깊었던 점은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뒤쳐져 걸어가는 나를 제외하곤 주위에 사람이 없었기에, 듣는 이가 없다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와 달리 더 대범해진 목소리로 같은 대목을 반복하는데, 왜인지 즐기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사람의 풍경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갑작스레 선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계획도 없이, 아무런 걱정도 없이 무심결에 이거라면 참 좋아하겠다, 하는 그런 물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텀블러를 선물해주기로 결심했던 적도 없었고, 그냥 평소처럼 읽을 책을 싸들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 목이 자주 마르다던, 그래서 동생의 스테인리스 컵을 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구매했다. 워낙 안목이 없는 본인이어서 내키지 않으시면 바꿀 수 있게 교환권도 챙겨뒀다. 주문한 음료를 챙겨서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조심히 가방에 넣는데 마음이 푸근해졌다. 조금 쌀랑했던 공기가 훈훈해진 것만 같았다. 이후 화해가 조심스레 성사되었다. 덤이었다.




사람의 기억은 왜곡을 만드는 데 아주 능하다. 무의미한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해서 인간은 생득적으로 불행한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무의미한 무채색의 세계에서 기쁨을 찾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전제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찾기가 아니라 만들기일지도 모른다, 의미라는 건.


아마도 사람이 해답이 될 거다. 무채색의 무의미한 세계를 빼곡히 칠하려는 열정을 품은 존재는 인간뿐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테두리로 그려진 컬러링북을 메우듯, 빛깔이 없는 곳에는 색을 입히고 싶은 감성적인 우리다. 빗물을 따라, 얕게 파인 길가의 고랑을 따라 떠내려가는 벚꽃잎을 보고 짧은 봄이 지나간다는 아쉬움을 전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만의 붓을 가진 각자가 서로 염색해주는 수밖에 없다. 너의 의미가 되어주고 식은 마음에 체온을 전해준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에 아쉬워할 때 떨어지는 꽃잎에 안타까워하는 당신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너와 나는 공감하는구나, 공존하는구나 느낀다. 이 알아챔의 순간들이 쌓여 옅어져만 가는 줄 알았던 각자에게 고유의 색깔이 물든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반전과 의외성이 모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진 않는다. 얇은 탁성이 거슬리고 빗물에 떠다니는 꽃이 더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누구든 그는 나를 제외한 유일한 제작자, 예술가, 정원사, 꿈꾸는 자, 색을 칠하는 자, 빛을 발하는 자, 어둠을 몰아내는 자, 세계를 재창조하고 닦아내는 자, 도움을 주는 자, 책임을 지는 자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었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이 사진을 뒤적인다. 물론 나는 모르는 얼굴이다. 꿈은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울먹거리는 선생님을 껴안았다. '사진을 보며 지난 일을 추억하는 사람의 회상에는 두려움이 붙어있대요. 어제의 미래였던 지금, 꿈꾸는 일이 끝마쳐지지 못하고 끝날까 봐서 그런 거래요. 선생님, 정말 그래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예요?' 하고 토닥거렸다. 아침이 오기까지, 꿈에서 깨기 전까지 모르는 사람(이길 바라며, 굳이 꿈을 해석하고 싶진 않다)의 등을 두들겼다.




안장에 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지면을 굴러간다. 동네 곳곳 상념을 묻어두었던 거리에 자전거 바퀴 한 굴림마다 반가움이 더해간다. 굴곡진 그림자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반갑고 적당히 지나치는, 조금 높은 풍경이 새롭다. 그리고 나에게 그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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