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실수 - 우연이 필연이 되기까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주 멋지진 않아도(그러면 좋겠지만) 책으로 쓰일 만큼(이것만도 멋진데?)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무얼 쓰겠냐는 거다. 대략적인 감(이라니. 느낌적인 느낌이랑 똑같은 말이네)만 한 가득 공책에 적어두고 더 이상 진척이 없다.
쓰는 작업은 꾸준히 파헤쳐야 하는 개성 발견 과정과 같구나, 싶었다. 생각을 정확히 그리려면 감정 몇 줌으로 대충 버무린 '아님 말고' 의견으로는 부족하다. 삶에 던지는 집요한 물음에서 개연성 듬뿍 담긴 현실적인 답까지, 이야기는 책임감 가득한 손에서 시작된다. 한 세계의 창조주가 되려면 대단치 않은 지루한 인생을 몇 곱절로 살아야 한다.
가끔 서운한 충고와 마주한다. 개인과 개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지나치다, 전체에 해가 된다 우려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글쎄,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선 말이다. '몰개성화'되는 조직 문화가 기본값으로 정해진 사회에서 나를 발견하겠다는 고백은 그 자체로 도전이다. 나의 말로 나만의 글을 짓겠다는 포부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꿈이다. 그래서 서운하다. 꿈을 짓밟다니.
누군가 기록해주지 않을 뿐, 우린 매일 이야기를 만든다. 공유하지 않는 거지, 소박한 꿈도 꾼다. 그래야 공동체 의식이고 연대고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아파 죽겠는지도 모르는데 누굴 챙기라는 건가. 눈치만큼이나 자아성찰도 해봐야 는다. 아픈지 알겠다고? 그럼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좀 들려주라. 아파서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대신해서.
갑자기 들려주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 말은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뜻이다. 결국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내 얘긴가 싶으면, 어차피 읽은 거 조금만 더 들어봐 달라.
일상엔 그다지 빛나는 것들이 없다. 깨끗하게 인정하자. 매일의 삶이 축복이라고 말할 열정과 낭만은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축복 혹은 저주다. 인생은 대부분 그저 그런 것들에 젠장 맞을 것들로 채워진다. 밍밍해진 아이스 카페라테, 축축하게 젖은 운동화, 돌 같이 굳은 잡곡밥, 화선지 같이 뿌연 봄 하늘 같은 것들이다. 좀 즐겨볼까, 하면 분홍 빛 낭만이 비와 함께 떨어진다. 무슨 마지막 잎새도 아니고, 안타깝게 져버린 기회들이 무심하다.
그러니 얘기할 준비를 하자. 손에 들린 휴대폰으로 풍경을 찍고 또 찍자. 마지막 잎새가 어떻게 떨어졌는지 그림을 그려보자. 다이어리를 사서 생각을 남기고, 떠오르는 사람 이름을 내뱉어 보고, 어디서 주워들은 웃긴 이야기도 적어두자. 흥얼거리던 노래 가사도 눈으로 읽으면 다르다. 필사가 뭐 대단한 건가. 아, 이건 내 문장이야, 하고 적어뒀더니 왠지 뭉클하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게 나만의 이야기다.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찰나의 번뜩임, 갑작스러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우연히 정리된 책상, 창틀에 반사된 햇빛, 유리컵에 비친 뒤집힌 세상, 바삐 뛰어가는 학생들, 버스 정류장의 할머니, 그 눈길을 따라 날아가는 새 몇 마리. 그렇게 내면에서 바깥세상까지 몰두해 보면 내 시선으로 그려지는 세상이 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채우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아니라 무언가가 가득 차있는 이야기의 행간을 본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에서는 스스로가 새롭다. 뿐만인가. 마침 망막에 맺힌 타인의 존재가 그렇게도 놀랍다. 어라, 저 사람 낯이 많이 익은데? 좋다, 이제 이야기를 만들 때가 되었다.
혼자 바빴던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나의 걸음으로만 채워진 사적인 공간이라고 느꼈던 도상에서, 같이 공기를 마시며 타인이 걷는다. 앞을 막는 느림보, 시야를 가리는 덩치, 시끄러운 목소리, 싫어하는 향수 냄새, 기분 나쁜 표정, 몰려다니는 무리가 아니다. 불려질 이름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로 세계를 읽는, 따라붙는 그림자를 지닌 채로 걷고 뛰는 '살아있음'을 본다.
그제야 자신도 용납한다. 내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사실을 느낀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깨달음이다.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빛 따라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잘한 것도 없는 나, 그래도 그리 잘못된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그 실수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 죄책감 그만 덜어내고 된다고. 아픈 만큼 성숙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어리광 좀 부려도 좋다고 토닥거린다.
그때 그 배터리를 카페에 두고 오지 않았더라면, 엄마랑 싸울 일도 없었을 텐데. 그 버스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지각하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같이 식사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 그랬을 것이다. 실수가 만들어 낸, 완벽한 차질 덕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덕분에 가족과 알지 못했던 진심을 나눈다. 덕분에 당신과 함께 떠들 이야기가 생긴다. 덕분에 국밥보다 깊은 대화를 나눈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가끔 필연의 접점을 만든다. 하지만 언제 우연이 필연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이야기를 기록하자. 기억하고 생각하자. 이 대단치 않은 삶이 완전한 실수와 만나 당신의 이야기를 쓴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에게 할 말이 생길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너를 향한 이야기가 들려질 것이다. 그리고 대단치 않았던 또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필연으로 가득 찬 인생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