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많던 맑은 봄날에
행복하고 싶다. 이 질문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당황스러운 주장을 본 적 있는지.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행복을 좇는다'. 아니 잠깐만,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살아남으려고 행복한 거라고? 그러니까, 행복하려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행복이 고픈 거라고?
행복이 생존의 조건이다,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 목적이라는 말. 진화론, 생물학 관점에선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뭐, 생존과 번식을 중요한 해석 틀로 삼은 학문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해야만 생존에 유리하다는 말이니 일리도 있고.
생물을, 그러니까 인간인 우리를 포함해서 유전자 전달 도구로 서술하기까지 하는 이 시선이 '인간'으로서 기분이 좀 나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러한 뒤집힌 문장이 사실인 것 같다. 거 참, 행복은커녕 생존이 더 중요한 경우를 우린 자주 본다. 삶을 치열하게 대할수록 둘 중 무엇을 위한 삶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살아남으려 하는가, 행복하려 하는가. 이 질문의 출처가 사회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라니, 가끔은 소름끼치는 삶이다.
먹기 위해 살까, 살기 위해 먹을까? 정답! 살려고 먹습니다. 땡! 먹으려고 삽니다. 땡! 뭐야, 그럼 답이 없어요? 아뇨. 둘 다 답이 됩니다.
삶과 음식은 동치가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운 요리 사진, 식탁에 둘러앉아 한껏 미소를 지은 사람들, 그게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혹은 전체인 날도 있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도 많지 않은가.
그럼 행복은? 맞다. 행복을 생존의 도구로 보기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맛난 음식도 행복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행복은 더 크다. 삶을 이루는 요소이면서 전부다. 오늘을 사용해서 내린 선택은 내일의 행복을 위한 경우가 많다. 점심식사 후 들이킨 커피는 나른한 오후를 선명하게 해준다. 밤과 함께 달린 술은 내일을 위한, 아 이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뒤죽박죽이다. 삶과 행복, 삶과 생존. 이게 아닌가. 삶, 행복, 생존, 이렇게 나열해야 하나. 아니, 순서를 재배치해야 할까.
살아남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렸던 적이 있다. 나 같은 비주류 인생도 당당히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굳은 의지로 실현시키고 싶었다. 난 여성스러운 게 아니라 좀 더 섬세할 뿐이고, 예민한 게 아니라 차이를 잘 알아차리고 구분하는 민감성을 타고난 거라고. 운동이 싫은 게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알코올보다 커피 향이 더 좋고, 소나기처럼 퍼붓는 북적거림보다 바닷소리처럼 잔잔한 대화가 더 맞는 사람일 뿐이라고.
조금 다를 뿐, 나도 당신들처럼, 아니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이 확신.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내 성격을 바꾸지 않아도 나다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 아름다운 확신을 이루어줄 정답을 찾아 헤매고 매달렸던 적이 있다. 나의 생존능력을 증명하려고,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물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졌지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인생이 떡하니 정답과 보상을 준다는 말은 이제 믿지 않는다. 사실, 그 말 개뿔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정당한 보상은 드물다. 최선을 선택할 심미안을 가진 적도, 가질 수도 없다. 노력은 열정이라는 불에 끼얹을 기름, 난방이나 요리를 할 게 아니라면 남는 건 잿더미뿐이다.
하지만 내가 요행을 바라겠다고 결심했다 여긴다면 오산이다. 힘을 좀 빼고 살겠다는 뜻이다. 우연이 가져다 줄 갑작스러운 기회를 인정하고 사소해 보이는 희망을 품겠다는 색다른 의지다. 생각보다 인생은 느슨할지 모른다. 난 증명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반항 섞인 주장을 증명할, 그러니 그냥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낼 거다. 내가 사랑하는 가치에 변하지 않는 의미를 부여할 만큼 살아볼 거다. 아마도?
내 왼쪽 새끼발가락의 발톱은 자꾸만 깨졌다. 언제 깨지는 건지, 분명 저번에 잘라냈는데 가끔 자려고 누우면 이불에 걸려서 거슬렸다. 귀찮아서 놔두면 다른 방향으로 휘어져서 양말에 구멍을 내려했다.
오래 걸어 발바닥이 저린 날, 발을 문지르다가 손이 왼쪽 발톱을 스쳤다. 어라? 얼마 자라지 않았는데 이미 갈라져있었다. 아하. 깨졌던 게 아니라 자라면서 이미 갈라진 거였구나. 그냥 넌 처음부터 그랬던 거구나.
맞다. 나는 그런 존재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거슬리는 존재. 마초적인 남자도 아니고, 단단하지 않고 무른 성격에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 하지만 상관없다. 어쩔 수 없다면 '예외'로서 생존할 거다. 행복하게 살 거다. 나답게 나의 행복을 찾아서 앞으로, 때로는 옆으로, 가끔은 뱅글뱅글 춤을 추며 살아갈 것이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했나. 이건 개인 달리기다. 출발선도 다르고, 도착점도 다른. 이봐요, 거기. 너무 빨리 달리면 경주가 금방 끝날 수도 있어요. 좀 천천히 가요.
햇빛이 너무 뜨거우니 좀 앉아서 나랑 얘기 좀 해요. 어디서 왔어요? 어디까지 갈 거에요? 피할 곳도 없는데, 구름이 낄 때까지 좀 기다리게요. 요즘 하늘 봤어요? 예쁘죠? 근데 보기에 좋지만 그림자가 너무 짙은 날이에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흐린 날엔 그림자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