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외로운 그대들에게

그날은 반드시 언제고 찾아온다

by 쓴쓴

(마음이 급하다면 밑의 네 문단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잠깐 아주 잠시 배우고 익혔지만 지금까지 느낀 바에 따르면 심리학이란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학문 같다. 인간의 심리에 관한 풀이를 연구하는 영역도 물론 있지만, 연구 결과에 따라 정립된 인간론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간의 선택에 대한 해석이 정해진다.


예건 하건대, 심리학은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충분히 오래도록 가교 역할을 할 듯하다. 철학자가 인간과 세상에 대해 내놓던 해석을 과학자가 다 뺏어가지 못한 이유는 심리학자들의 공이 크다.


심리학자들은 심리학 이론의 토대가 과학만큼 단단하지 않고 철학자만큼 자신들이 사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의 고통 그 자체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철학자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행동하고 과학자보다 어떤 면에선 더 맹렬하다.


놀라운 것은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문제 해결점을 그 문제로 힘들어하는 당사자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짐을 더 지우다니, 잔인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심리학자들에겐 매우 당연한 인과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관점을 바꿔야 할 이도 당사자다. 그러니 문제를 극복해야 할 이가 당사자라는 말인데, 만약 그것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그러해도 관점을 바꾸고 극복한 인간이 책임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사회는 누가 바꾸는가? 사람이다, 결국. 잔인한 현실이다.




그러니 하늘도 무심하다, 하는 날이 있다. 젠장 맞을, 지랄 맞을(갑자기 튀어나오는 비속어를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날이 왔다. 억울함도 아니고 서글픔도 아니며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른다면 모를까, 정말 똥(무언가를 잡수시는 중이었다면 죄송하다) 같은 날이 있다.


근데 눈물이 나질 않는다. 한을 풀어낼 곳이 없어서다. 눈물도 흘릴 만한 적당한 곳이 있어야 하는 법. 어디로 갈까, 마음따라 걸음따라 반쯤 나간 정신을 겨우 붙들고 세상을 휘젓듯이 헤맨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심장이 쿵쾅댄다. 산책 따위로는 생각만 더 크게 만들고 뜀박질로는 성이 안 찬다. 왜 인간에게 날개가 없는 건지, 어디 멀리 아주 높이 훨훨 날고 싶다. 그러다가 그냥 어디 가서 콕하고 쳐 박고 싶다.




그러다 그만 주저앉았다, 나는. 엉엉 미친 듯이 울었다. 꺼이꺼이 소리 내며 통곡했다. 부끄럽지 않았냐고? 다행히 집에서 울었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덜 부끄러워서 그런 거냐고? 아니다. 가족도 민망할 정도로, 미래의 나는 분명 부끄러울 만큼 울었는데, 오늘은 나의 날이고 싶은 이기심이 철면피를 깔아줬다. 세상이 떠나가도록 안개 낀 내 안의 세계를 눈으로 코로 입으로 내뱉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거울 앞이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 세수를 시작한다. 갈색 부분만 빼고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축축하게, 멈추질 않는 눈물이다. 지독히도 흐르고 싶었나 보다. 언제 이렇게 많이 쌓아뒀나 싶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촉감이 다르다. 축축하고 끈적하다. 괜스레 더 흘린다. 눈물이 눈물들을 데리고 나온다. 술을 마셨냐고? 아니다. 다행히 맨 정신에 울었다. 왜 다행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왜 울었는지 어떻게 울었는지 뭘 소리 질렀는지 다 기억 나서다. 상하고 아픈 건 부은 눈뿐이다.




기적처럼 찾아온 시간과 생체리듬의 교차점. 절대 넘기지 말라. 그럼 잊질 않는다. 뭐가 억울해서 울었는지, 기억에 다 박아놓는 게 낫다. 잊어버리면 또 어디선가 터진다. 이놈의 기억은 멍청해서 혼미할 때 울면 개운하지도 못하고 털어내지도 못한다. 되려 덜렁덜렁, 잇몸에 붙어있는 젖니처럼 아프기만 하다. 그렇게 내일을 맞으면 속만 이중으로 타들어간다. 그리고 열 중 아홉으로 주변 이들과 멀어질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심리학자들 말에 따르면 문제는 오히려 억눌린 감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감추고 숨겨봤자 속을 상하게 만드는 독만 된다. 감정은 표현해야 제 맛이니, 멋지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나답게, 다만 남들에게 피해만 안 가는 선에서 충분히 내뱉자. 왜 커트 보니것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제발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청승맞게 음악을 들으면서 울라고.


그런 날이 온다. 분명히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마치 한 번도 물든 적 없다는 듯이 하얀 눈을 뚫고, 삼킬 줄만 알았지 뱉을 줄 모르던 뻘건 입술을 여는 날이. 내 세계의 외로움이 흘려낼, 마른 대지 같은 기억의 사막에 또렷하게 물자국을 낼 눈물의 날이 온다.


또는 그리웠다고 걱정돼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소나기가 내리는 날도 온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듯이, 쌓아둔 일 년 치 용기를 그대를 위해 꺼내놔야 할 때도 올 것이다. 그럼 소리지르자. 마음껏. 제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