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사람들

슬픔이 아픔이 되면

by 쓴쓴

키가 작은 사람을 보았다. 성인 남자 평균인 내 키에 절반 정도 돼 보이는, 가까이 다가서니 정수리가 그 높이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 정도로 시선이 닿지 않았다. 이 남성은 중년이었다. 먼 거리서도 회색으로 번져 보이기엔 이른, 드문드문 보이는 흰머리가 조금 어색한 아저씨였다.


그는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번호에 돌아가는 몸을 보고 알았다. 내 앞에서 걷던 그는 어떤 이유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리고 사지가 모두 짧았다, 고 느낀 그 순간 차도로 내려서는 그의 발이 미끄러졌다. 넘어진 작고 다부진 몸을 알아차린 나는 어깨에 손을 넣어 일으켰다. 돌아오는 대답, 감사합니다.


그는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가는 턱보다 낮은데도 버스로 오르는 계단을 더 힘들어했다. 넘어질 수 없는, 그러나 오를 수도 없는 난관이었다. 책을 쥐고 있던 손을 바꿔 엉거주춤했던 오른손으로 다시 한번 어깨 안쪽을 들어 올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난 두 번째 접촉, 그 짧은 만남에서 팔에 잡힌 단단한 근육으로 그의 생활을 조심스레 어림잡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힘만으로는 부족했던 날이었다. 힘을 받쳐줄 왼쪽 다리를 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오늘은 무슨 날일까. 그는 왜 오름과 내림을 감수하는 오늘을 맞이해야 했을까. 얼마 가지 못하고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수많은 승합차가 오가고, 수없이 많은 무릎의 걸음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갈 터였다. 그는 얼마나 더 많은 오름과 내림을 겪어야 할까. 나에겐 걸어서 15분 거리인 버스정류장에서 그는 넘어지고 머뭇거렸다. 나는 의식도 하지 못할 작은 턱에서 그는 어린 사람처럼 뒤뚱거리며 걸어야 했다.


나에게 오늘은 생각을 재운 날이었다. 수챗구멍으로 회오리치며 빠져들어가는 우울의 소용돌이를 감정이 없다는 듯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것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의 처음도 알 수 없었듯이 반복되는 우울의 완전한 끝도 알 수 없다. 그저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의식을 따라 습관대로 책을 들고 나온 날이었다.


웅크린 말들. 내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책의 이름이었다. 왼손으론 카드를 꺼내야 해서 들기 편한 쪽을 각자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중년의 아저씨가 내 오른편에서 넘어져 나의 오른손이 급히 필요할 거란 걸. 그래서 엉거주춤했고, 그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나는 그저 점점 추워져 가는,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 편두통이 오는 듯한, 지긋지긋하고 어두운 하늘 아래서 나의 상태를 인식하길 애쓰며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간절한 이기적 마음 앞에 사람이 쓰러졌다. 손을 내밀어 그를 두 번 일으켰다. 그는 알았을까. 자신이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이라는 사실을. 얄궂은 꽃샘추위에 얇은 점퍼 하나를 입었으니 떠는 몸은 당연하거니와 저는 다리를 이끌고 턱 하나를 넘지 못할테니 넘어진 자신이 익숙했을까.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특별한 반응 없이 자신을 돕는 이에게 몸을 맡기는, 그의 작은 몸에게 넘어짐이 나의 독서처럼 일상이었기를 나는 바래야 했던 걸까.




그런데 그는 알았을까. 자신의 몸이 더 이상 크지 않는 시작의 날을. 이 몸은 끝을 내지 않고 웅크린 채로 자신을 평생 기다릴 거라는 현실을. 그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하루가 지는 해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삼십분 남짓한 등굣길에 들고 나온 책을 단 한 쪽도 읽지 못했다. 웅크린 것들이 살아나 머리를 울렸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몸을 아프게 한다. 억눌린 표현은 몸을 상하게 한다. 결국 오랜만에 편두통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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