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의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쓴쓴

나는 땅콩빵을 좋아한다. 호불호가 분명한 동생이 나보다 더 좋아한다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추운 겨울, 둘이 나눠 먹을 때마다 입 안에 풍기는 고소함과 씹히는 식감이 나름 괜찮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 좋아하게 된 듯한데, 괜찮은 대로 그냥 좋았다.




생물학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장균이 포도당과 젖당 중 무엇을 더 좋아하는가, 인데 결론은 포도당이다. 물론 과학자들이 대장균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는다. 다만 둘 중에 포도당을 먼저 소화시킨다는 점에서 '좋아한다'라는 인간의 언어를 입힌 표현이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 거 말고 좋아하는 거 말이다.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인간관계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보다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또 누군가는 싫어하는 일만 안 일어나면 그나마 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정말 그런가? 나는 그 의견에 반대표를 던진다.




사람은 행복하려고 산다. 우선 들어보라. 내가 딱히 내세울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것 같다. 인생이 주는 과제는 넘치고 문제없는 삶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을 내일로 이어가는 이유는 뭔가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든, 수단이라면 행복에 이르는 길일 테고 목적이라면 행복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인생이 마냥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며 살도록 고민하고 선택할 시간을 주는, 그런 간단하고 만만한 대상은 아니다. 때로는 미친 듯이 살고 어쩔 때는 등 떠밀려 걷고 가끔은 취한 듯이 꼬불꼬불 낙서하듯 살다가 우연히 엔터를 누르면 페이지가 다음으로 막 넘어간다.


우리는 그런 정신없는 삶을 산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서 싫어하는 일을 기억하고 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훌륭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알려는 시도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그건 너무 중요하다. 웬만하면, 그냥 괜찮은 대로 '오케이'를 외치고 싶지 않다. 정말 뭘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날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작은 것이라도 깨닫고 싶다. 그리고 일깨워주고 싶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좀 네가 알아 달라고.




나는 나의 기호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가 싫다. 나의 기호를 밝히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싫다. 어쩌면 우리에겐 '우리' 사이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용기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로 없냐면, 방금 나는 두 문장이나 무엇을 싫어한다고 얘기했다. 좋아한다고, 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나의 기호를 들어줄 이가 없어서일까. 우리에겐 사람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일깨워 줄 이가 필요한 걸까.


간혹 그런 문장을 읽는다. 고통,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사건들을 겪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일견 옳다고 보고, 일리가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고통의 정도가 삶을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생존'하려는 노력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가, 하고 나는 자주 물었다. 부서져내리는 나의 세계를 어떻게든 쌓아 올리려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시간을 오래 겪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게서 도망치고 싶은지, 너무나 뚜렷한 그 현실을 매일 보았다.


그러한 현실에 세계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고 가정해본들, 발견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자신마저 무너지는 상황을 겪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달을 힘이 있을까. 나를 무너뜨리는 '인생의 사고 현장' 한가운데서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냥 사는 게 사는 거지 뭐. 그것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래,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 보편적인 측면에서든 통념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든, 별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큰 고뇌를 실으려 애쓰지 않는 상태가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란 사람과 같은 지적 생명체만이 '생각 놀이'로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빛을 뿜어내거나 어두움 속에 잠기는 우주 한복판에서 삶의 폭죽을 터트릴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너무 사랑하고 생각만 해도 좋은, 눈을 감아도 떠오르고 굉장한 설렘은 아니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가슴에 차오르는 그런 것이 이 우주 안에 단 하나라도 없다면, 아니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이 불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일까. 그냥 덫을 피해 도망치는 사냥감처럼, 지뢰밭을 조심스레 밟는 것처럼 싫어하는 일을 피해 숨어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은 분명 우리가 행복하라고 만들어졌다는 어느 신앙고백을 믿고 싶다. 컬러링북을 칠하듯이 시간이 걸려도 꼼꼼하게 내게 의미 있는 아름다움을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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