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날씨를 속인 날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것까지

by 쓴쓴

어젯밤 하루 종일 내린 비 덕분에 미세먼지도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핑곗거리가 없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곤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휘어지는 허리를 동여맬 벨트를 차고, 어제 입었던 옷을 찾았다. 이제 두꺼운 후드 티는 못 입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젠 이 옷이 참 더웠지, 생각하며 천천히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나와보니 바람이 시원했다. 창문으로 훔쳐본 하늘은 생각만큼 역시 예뻤고 발걸음만 가벼우면 딱이겠다 싶었다. 살이 좀 쪄서 그런지 몸이 둔해졌다. 의사 말로는 나쁜 증상은 아니라고 그랬다. 이전보다 배도 덜 아프고, 삶에 의욕이 생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먹는 양이 이전보다 많아져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의사는 그러니 조금 더 움직이시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라 했지만, 사실 건강 때문에 걷는 건 아니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그냥 읽을 책을 가득 가방 안에 쌓고, 마냥 걷는 걸 좋아하긴 한다. 오늘은 자주 앉아있는 카페를 가려면 좀 걸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걸었다. 덕분에 걷다 보면 졸업한 대학교 교정도 걸을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


어제와 같은 옷을 입었는데 오늘은 조금 쌀랑했다. 창문 안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참 맑았는데. 하긴 맑은 거랑 따뜻한 거랑 무슨 관련이람. 하지만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혼자 속은 건가. 시각이 촉각을 속인 거네,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듣긴 했다. 생물학자를 비롯해서 우리 시대의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인간들과 인간이 만든 사회는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했다. 하긴 우리에게 시력이 절대적이긴 하다. 박쥐처럼 초음파를 이용할 수 있지도 않고, 개처럼 후각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에 비해 잘 본다고는 말 못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방향을 잡고 걷는 걸 보면 눈이 절대적이다는 말에 토를 달긴 어렵다.


그래도 눈으로만 알 수 없는 게 많다. 인간의 오감 중 날씨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은 몇 개가 있을까. 시각은 비, 구름, 태양의 위치, 빛, 달의 모양, 번개, 안개 등 시야를 파악한다. 후각은 공기 중의 물 냄새, 흙냄새, 사람 냄새를 담당한다. 청각은 빗소리, 천둥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를 알아챈다. 미각은 글쎄 잘 모르겠다. 가끔 혀를 내밀고 눈을 맛봤던 적은 있다. 촉각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 그리고 기온을 느낀다.


절대로 눈으로만 기록할 수 없는 '오늘의 길'을 걸으며 온 몸으로 날씨를 느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실내를 좋아하는 내가 어리석었다. 일기예보가 말해주는 대로 현재 날씨만 보고, 그저 봄이겠거니 어림잡았다. 문을 열어 직접 나와보지 않는다면 상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왜 이리 낯설었을까.




대학원을 다니며 벌써 많이 배운다. 무엇보다 사람에 관해서 배운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 중에 예상과 가장 많이 다른 존재는 사람이다. 오늘 의사와 상담하면서 나눈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면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역설적 반응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등굣길에서 그런 역설이 나타난다. 등교하며 긴장하는 나는 복통과 식은땀에 시달리지만, 막상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으면 조금 나아진다.


내 생각 속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내겐 사회적 기술을 익힐 만한 기회가 없었고,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만한 기회를 매 번 박탈당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 사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것조차도 나를 위험한 상황에서 건져줄 수 없다는 판단에 두려워 떨었던 기억들로 괴롭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세계가 오로지 죽음 외에는 탈출구, 곧 구원의 방도를 만들어두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새로운 세계를 돌아다녀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이나 세상은 더 다채롭고,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좋은 변수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또한, 나는 안다. 사실 변한 것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여전히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해보다는 달과 함께 보낸다. 그럼에도 이제는 쉽게 절망의 소용돌이를 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무작정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고통이 나의 몸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듯이, 살아가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세상이 알려주었다.


고통과 신음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나는 최대한 오감을 뻗어내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눈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관찰하고 찾아낼 것이다. 나의 예민함이 더 많은 사람의 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찾아내야겠다. 그림자로 덮인 달의 세계에서 눈을 감고 기다려볼 예정이다. 그렇게 나의 민감성을 두려워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무뎌져 버린 육감도 되찾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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