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닦다 자신을 지우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가 청소를 시작했다. 언젠가 해야겠지, 마음만 먹었던 그러나 계획은 절대 세우지 않던 책상 정리를 장인의 솜씨로 해내고 있었다. 다만 장인이란 천부적 감각보다는 쌓아온 명성의 시간만큼이나 길게 늘어지는 반복 작업을 계속하는 데 능해야 한다. 손에 익는 지루함을 믿어야 한다.
이과생들은 열역학 법칙을 배울 때 '어질러진 방 치우기'를 예로 많이 접한다. 모든 물건이 어지럽게 섞인 방이 있다. 당신은 무질서도가 높은 상태를 본다. 만약 청소를 한다면 일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일'을 한 덕분에 방의 무질서도가 내려간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무질서는 사실 없어지지 않았다.
무질서는 방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그것은 쓰레기로 탈바꿈해서 방 바깥을 어지럽혔다. 청소는 끝나지 않았다. 새롭게 생성된 무질서를 잘 분류하여 쓰레기장까지 들고 날라야 한다. 그제야 나의 일이 끝이 난다. 다시 한번, 무질서는 사라졌다. 물론 집 안을 얘기하는 말이다. 쓰레기장은 덕분에 이전보다 무질서해질 것이다.
지루한 이과 이야기가 끝났다. 마침내 나도 쓰레기를 다 정리했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것도 같다. 무엇보다 책의 이름을 직접 맞대어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전에는 책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하기 싫고, 일일이 다 들춰내기가 귀찮기도 해서 찾지도 않던 책의 민낯을 본다.
땀과 먼지로 범벅된 몸을 씻고 나오다가 아차 했다. 늦은 시간까지 치우느라 약 먹을 시간을 지나쳤다. 갈증도 해소할 겸, 물 500ml 한 병과 약을 같이 삼킨다. 그래도 가시지 않는, 떨어지는 물 사이로 떠오른 궁금증이 있다. 쓰레기장의 쓰레기는 어떻게 치워지는 것일까.
불면증을 앓는 나는 가끔 쓰레기 수거차량이 동네를 도는 소리를 듣곤 했다. 여름이면 창문으로 넘어오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목소리는 몇 번의 밤을 새도 듣지 못했다. 오직 차 엔진 소리와 기계음만 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쓰레기를 날르는 사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새벽의 환경미화원은 한밤을 틈타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 어지럽혀진 거리를 질서 있게 만든다. 아무리 아침을 일찍 깨워도 마주칠 수 없는 그들의 존재는 마치 천사와 같다. 아침의 거리는 단 한 번도 어지럽혀진 적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무질서했던 공간에 질서를 부여했던 사람이 있었다.
청소차량에 치여 사망한 청소미화원의 소식을 얼마 전 접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죽음은 작업의 수고만큼 기억되지 못하고, 그분들의 삶처럼 감춰진다. 도시의 무질서를 지우다가 기억에서 지워지는 이들이 과연 이들뿐일까 싶었다. 내가 쉽게 버린 무질서의 수준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거대하게 커져버린 인간들의 쓰레기를 치우는 분들은 누가 돌봐주는가 싶었다.
삶이 어지러울수록, 나의 욕심과 푸념 같은 일상마저도 무질서를 만든다. 홧김에 버린 생각의 결정체, 무심코 던진 기억의 말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그 와중에 세상의 무질서를 모으고 세상을 닦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 영원한 혼돈에 빠지지 않는 까닭은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의 수고 덕분이다. 새벽의 환경미화원처럼, 화장실의 청소부처럼, 전화기 너머 상담원처럼, 보이지 않기에 없다 생각하기 쉽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질서있는 일상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복잡한 심상이다. 세상의 쓰레기들을 모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모아, 오늘을 내일로 넘기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세상의 악취와 더러움을 지우려 애쓰는 삶이 쓰레기와 같이 지워지는 현실을 생각한다. 필요 없는 물건을 내어놓을 때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이다. 책을 버리면서 아팠던 기억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발을 떼어보려던 나는, 꾸러미에 묶인, 그러나 결코 버려질 수 없는, 사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