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주는 힘

삶을 위하여 내는 용기

by 쓴쓴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외침을 가볍게 듣지 말자.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은 공격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만 더 평등한 인간이 있다는 오래된 주장에 함께 저항하며 연대해야 한다.




여성이 인간이라는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할 이유는 하나로 축약된다. 인간이라는 정의 안에 여성이 온전히 포함되지 않는 현실이다.


미투 운동은 성대결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범주를 '실재'하는 인간 모두에게로 확장하려는 인간 사회의 시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멀리하거나 배제하거나 조심하라는 게 미투 운동의 핵심이 아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성별이 어떠하든 성 정체성이 어떠하든 그저 사람으로 봐달라는, 존엄을 요청,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이해해라. 당신이 만약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를 대하는 데서 성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그 부담은 당신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사회성이 부족한 까닭이다. 왜냐하면 여성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혐오 사회>를 쓴 카롤린 엠케는 해당 책에서 혐오의 원인을 상상력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타인을 상상하는 힘이 부족하면 타인을 혐오하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타자는 분명히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질면만을 찾아 모이려는 사람들일수록 존재하지 않는 근거로 미움을 정당화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사람은 다 다르다는, 심지어 그 다름에 성별도 포함하여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려면 각 사람의 발언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 그가 누구든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여야만, 나의 나 됨이 균질하지 않은 공동체에서 존중받는다는 신뢰와 기대감이 형성된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누군가의 죽음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타인을 상상해낼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사회가 내일을 잊고 오늘만을 살아남게 부추겼던 까닭에 '너'의 살아있음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나'의 살아있음이 이름 모를 이의 희생과 노력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어릴 적 마음 가득히 세상을 그려내던 그 힘을 불러내보자. 볼 순 없어도 분명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릴 수 있다면, 그들의 외침을 듣게 되고 생명의 고통에 공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제안한다. '삶' 자체를 위하여 하루에 한 가지씩 상상해 보자고. 나부터 시작하겠다. "나는 타인과 공명하는 마음을 가진 작가가 될 거야".


자, 이제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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