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서
오랜만에 번역서를 읽어서 그런지 독해가 안 되는 기이한 낭패를 겪는다. 쉬는 동안 읽던 도서의 저자 열에 아홉이 한국 작가여서 독서에 큰 걸림이 없었던 까닭이다.
예습으로 매 번 요약해오기를 과제로 내주신 교수님을 만났다. 읽는 데만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요약하는 게 더 버겁다. 익숙한 어투로 옮겨 적으려니 주어와 목적어가 날아다닌다. 지나치게 거창한 부사를 지우다 동사가 사라진다.
번역은 반역이라더니, 문학세계만이 아니다. 두루뭉술하게 이해하기는 싫어서 어떻게라도 문장을 손대고 있는데, 내가 지금 뭘 공부하는가 싶다.
이 와중에 전공서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상담자와 내담자 관계를 서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집중해야 할 상담자 입장에서 나는 자꾸만 이탈했다. 역시 내담자라 이건가. 상담자가 참 고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먼저 했다.
덕분에 저술 의도보다 더 입체감 있게 읽은 듯했다. 이론을 숙지하기 이전에 이론이 설명하려는 '치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만 같았다. 역으로 내담자로서 말실수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상담자의 실수에서는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을 봐야겠구나, 하는 조금 엇나간 의도도 발견했다.
어느덧 첫 강의는 지나갔고 두 번째 수강일을 앞두고 있다. 짧은 시간을 뒤돌아보니 용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에겐 없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다. 그들에겐 없지만 나에게 있는 것은 병뿐이다. 속상했다. 내게만 있는 것은 없을까.
마침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던 어제 일이 떠올랐다. 나는 나일뿐이야. 오랜만에 등교하느라 불안해 떠는 내게 던져진 대화 속 위로였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나일뿐이라는 말에 기가 찼다. 좋은 의미다. 정말 기가 차올랐다.
나에겐 잠잠히 글로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꿈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지워진 존재들을 세상에 나타내고 싶다. 지워진 그들이 스스로를 그려내는 이야기를 쓸 수 있길 바란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은 병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