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표지의 부제(Under Saturn's Shadow) 밑에 쓰인 짤막한 문구다. '그들'은 당연히 남자일 테고, 무엇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그림자다. 문장 내에 그것 외에 다른 중요 용어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필자가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이 남성의 삶을 조망하며 사용하는 도구가 융 심리학이기 때문이다.
융이 세운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다. 이는 마음 내면에 감춰진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가리키는데,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융의 지론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그림자의 의미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 문장은 융이 지적한 내면의 그림자를 잘못 품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잘 되지 못하였는가를 차차 적어볼까 한다.
스위스 취리히의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이 책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남성이 벗어나야 할 그림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영혼에 드리워진 그림자 - 그는 이를 새턴(토성)의 그림자라 칭한다 - 와 그림자가 그려낸 일그러진 남성의 형상을 대략 여덟 가지로 나눠 제시한다. 이를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성역할 기대
2. 공포의 지배
3. 여성성 (그리고 '2. 공포'와 연결된 여성성 공포증)
4. 강요된 침묵
5. 어머니 콤플렉스
6. 남성: 폭력의 가/피해자
7. 아버지 결핍증
8. 내면에 잠든 치유하는 힘
이 정도면 꽤나 많다 할 수 있다. 추론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조금 어려워 보이는 개념도 보인다. 그러기에 실은 본서를 깊게 읽어내려면 융의 사상을 이해하여야 유리하다. 때문에 독서에 도움에 될만한 융 심리학을 조금 곁들여 보고자 한다. 앞서 나열한 여덟 개념들은 딱 구분되진 않지만, 개략적으로 그림자 그 자체와 그림자가 강요한(혹은 그려낸) 남성의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에서도 언급했지만 원래 융이 말한 그림자는 우리가 무의식에 숨긴 어두운 면이다. 그런데 제임스가 말한 그림자는 외부에서 드리워진 것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사회관습과 문화로 전파되고 굳혀진 성역할의 무게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곧 새턴의 그림자는 강요된 성역할이다. 남성은 그러기에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하고 나약함을 숨겨야만 한다. 본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게 '남성'으로 자란 남자들은 성장 시 '폭력'에 노출되며, 자신의 본모습이 탄로 날까 봐 '공포'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침묵'하기를(내면의 약함을 고백하지 못하는) 강요받는다.
제임스는 그래서 융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내면의 여성성(아니마)과 남성성(아니무스)을 빌려온다. 여기서 ㅡ려진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해하려면 전통적 성역할에서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이런 정의는 시대의 한계를 품고 있다). 융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내면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 품고 있다. 때문에 어느 한쪽을 무시하면 내면세계가 불안정해진다. 그러므로 남성은 내면에 자리한 여성성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비밀을 털어놀 줄 알아야 하며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무엇보다 여성에 관한 막연한 공포(가부장 권력 혹은 의존으로 나타나는)를 버려야 한다.
융은 개인 무의식 외에도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세운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집단 무의식을 단순하게 말하자면 오래전부터 인간 공동체에 쌓여 형성된 공통의 사회문화를 말한다. 여기서 '원형'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남성은 어머니 콤플렉스와 아버지 결핍증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상을 풀어가는데 쓰인다. 여기서 어머니란 아동의 양육자이면서 성인으로서 독립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본질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성인 남성이 따라야 할 멘토와 같은 존재의 표상이다.
이렇듯 본서는 철저하게 융 심리학을 따라 남성의 삶과 그림자를 파헤친다. 그러기에 융 심리학이 마주하는 비판점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제임스는 융의 원형 개념을 가져오면서 조상, 종족 선조,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관해 언급하는데(아버지 결핍증과 관련하여) 이러한 유산들이 산업혁명 이후로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재차 말하자면 남성을 남성답게 할 가치를 과거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자가당착이다. 왜냐하면 제임스는 가부장제 형성 원인을 과거로부터 내려온 남성의 여성성 혐오에서 찾기 때문이다. 남성을 성역할에 가둔 과거의 유산이 동시에 남성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이러한 주장에는 다소 빈틈이 있어 보인다.
또한 제임스는 자신의 논지를 신화와 종교, 문학에서 찾는다. 이는 융 심리학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래서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융 심리학은 서로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고 빈틈이 있음을 자인하기도 한다. 물론 융은 경험 과학자였지만 그의 영혼과 무의식 탐구가 현대 과학과 심리학 검증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점에서는 결핍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빛을 발하는 이유가 있다면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혼을 위한 여정을 떠나도록 설득력 있게 논증하며 남성을 변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이 자주 언급하듯이 남성 또한 여성처럼 성역할에서 자유로워야 함을 심리학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괄목할만하다. 남성 또한 오래된 문화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독자는 성별을 막론하고 저자의 주장을 되새김질할 여지를 가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남성은 전통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전통적 남성성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남성은 좀 더 이전보다 여성성을 지녀도 되며, 자신에게 부과된 남성성에서 해방되도록 스스로를 돕고 타인을 도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한 객체이자 본인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