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에 적셔지는 홀로의 시간을 가진 지가 얼마만일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가, 와 씹을 만한 고독이 있는가, 는 관계가 없다. 가끔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과도하게 내면으로 침잠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안에서 떠올라 수면을 따라 부유하는 상념을 따라 끊임없이 따라가 보기도 해야 한다.
글을 얼마 전 쓰기 시작했다. 수필은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극본이라고 물으면 소심하게도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겠지만 주제도 없이 난항 중인 이야기 전개에, 답할 사람 없는 대사만 계속 물고 늘어지는 중이다. 사실 에세이는 상대적으로 쉽다. 본인에게 솔직해지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인데, 그것이 어려워서 그렇지.
소설류는 상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로 어렵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엔 이야기 지어내기와 시답잖은 장난을 치려는, 개연성 없는 결말 내기를 용기 있게 했었다. 그걸로 재밌고 즐거워서, 마음껏 날개를 펴 상상의 하늘을 날아다녔더랬다. 그런데 요즘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진 탓이다.
상상의 하늘에 사상의 별들이 떠오르자 밤하늘의 빛이 눈초리처럼 따가웠다. 그 까닭일까. 날개는 접히고 부러졌다. 그러자 모두 다 숨어버렸다. 내 안에 감춰둔 이야기가 이렇게 박했던가, 싶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읽고 감탄하다가 질투하다가, 이내 감상도 포기하기까지 했다. 분명 말하고 싶은 말들이 있을 텐데.
나의 상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지워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서 멈춘 것 같다. 이 이상으로 구체화되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머릿속에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럼 받아 적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알고 있다. 그러려면 찾고 찾다가 마침내 놓쳐야만 하는 영감이란 게 필요하다고.
이런 이유로 감상에 적셔지는 홀로의 시간을 가진다. 고독을 씹고, 내면의 눈빛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상념을 따라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이때 내 발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이 있다. 부서지듯이 아프다. 흐르는 이 시간이라는 것은 물과 같다. 몸서리를 치도록 차갑고 얕은 그것이 그럼에도 그리운 데는 달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