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봄은 오는가

값비싼 심술

by 쓴쓴

생을 잇는 호흡 하나가 타인에게 죽음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참혹함. 거대한 온실이 되어버린 시간의 장벽을 넘으려 우리가 이토록 삶의 무게를 서로 나눠가졌던 때가 있었나 싶었다. 사실 멀리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현실이란 모든 '나'는 '너'를 만나서 삶을 꾸려 나간다는 명백함이다. 도처에 있는 스물네 시간 편의점만 보아도 로봇이 아니라면, 그곳을 지키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엔 생(life)이 있다.


모두가 서로에게 짐을 지우고 서로의 짐을 기꺼이 든다. 마음껏 든다기보다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본인의 건강과 삶이 방금 스쳐 지나간 이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당신을 지키지 못하면 나도 무너질 수 있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공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보통 사람인 우리 대부분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거리로 나가 태양을 따라 변해가는, 낯선 거리를 본다. 띄엄띄엄 놓인 존재들 사이로 꽃샘추위의 바람은 세찬데 반해 걷는 이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럽다. 아이러니한 이 고요한, 쓸쓸한 풍경은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던 밤의 농도만큼 황량하지 않은가 싶다. 시절은 지나 이곳저곳 나타나는 것들이 있는데 천지를 채운 그림자만큼이나 짙은 공포는 겨울의 분위기를 내주지 않는다.


봄의 차오름과 함께 심술이 차오른다. 많은 날들이 지나버릴까 안달이 나는 까닭은 사람의 몸을 구속할 순 있어도 마음은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한껏 부려야 할 멋과 켜야 할 기지개를 접어두다 보니, 다가오는 계절을 줄곧 기뻐하기가 어렵다. 봄은 우리에게 왜 오는가. 그것에겐 목적이 있는가. ''의 뽐냄이 반갑다가도 쓴웃음이 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값비싼 고민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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