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다양한 배음을 지닌 내 삶의 면면을 돌이켜보면 삶이라는 불가사의에 고개를 절로 숙이게 된다. 전공으로 접한 '과학'과 Christianity로 대표되는 '종교'와 대학원 공부로 이해하는 '심리학'은 현재 세상을 이해하는 나의 삼위일체 도구다.
이와 같은, 이해를 돕는 도구 덕분에 나는 좀 더 지식의 밭을 경작하기에 수월함을 느낀다. 다만 무뎌지지 않도록 벼리는 일이 쉽지 않고 맺힐 열매들의 운명을 알 길이 없어서 막연한 보상만으로는 앎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이것이 먹고사는 일과 어떻게 연관될 것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다. 세상과 나를 알고자 하는 내면의 충동이 과연 나의 자연스러운 존속을 보장해 주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듯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 그러니까 보편 하는 '나'라는 모든 존재에 숨어든 악에 관하여 증거 하는 과학과 심리학의 고발을 읽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나는 고민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던진 이 질문이 문득 한 권의 책 사이로 떨어졌다. 그는 사랑이라고 답했고, 그렇게 사랑 없는 세상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의 부재를 고발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과학과 종교, 심리학을 가지고 무엇을 답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글을 쓰는가, 한다. 난 어쭙잖게 세상을 비판한다. 네겐 이것이 없고, 저것이 없구나. 아, 그러나 '없음'을 어떻게 증명할까. 톨스토이에게 나는 문득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는 사랑이 있었느냐고. 그래서 '사랑 없음'을 비판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