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나는 이전에 이런 문장을 남겼었다. "오랜 친구란 없다. 친구이거나 그냥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일 뿐." 이 발칙한 생각을 굳이 글자로 옮겨 적었던 이유는 친구라는 존재의 현재성에 관하여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시간을 초월한 우정 혹은 그 비슷한 것이 주는 애틋함을 남기고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어제 '오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계획된 하루가 지나자 어젯밤 느꼈던, 여행자가 느끼는 낯섦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은 실로 진실된 것이자 오래된 것이었고 지금의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바라보았던 천장과 방의 구조, 빌려 입은 잠옷에 벤 세재 냄새, 창밖에서 들리던 빗소리, 미닫이문을 통과해 은은하게 비취던 푸른 불빛, 오돌토돌한 이불과 높게 솟은 베개의 감촉. 잠을 청하려 눈을 껌뻑거렸던 침묵의 시간.
오랜만에 단잠을 잤던 것은 왜일까. 요 근래 잠이 오지 않아서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도 살포시 내려놓고 무엇을 향해 또렷했던 의식을 급히 내려놓았을까.
한 사람의 방은 오롯이 그의 공간이 되려 애써진 흔적으로 채워진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한데, 때문에 나는 내 방을 물건으로 채우다가 섬찟 놀라 부끄러워했다. 누군가에게 읽히진 않을까. 본인의 장난스러운 그림자가 나타나서 누군가를 놀라게 하진 않을까, 하고.
해서 남의 방에 들어가면 죄송하여 눈을 아래로 깔아야 하는 나는 곁눈질로 방을 훑는다. 그렇게 조심히, 한 사람의 노력과 오늘을 내일로 넘긴, 차곡차곡 쌓이고 덧대진 의지의 색채와 향취를 읽는다. 그곳에서 실로 나에겐 익숙지 않은 것들과 외부인의 때로 더럽혀져선 안 되는 거룩한 현장을 마주한다.
주인이 먼저 떠난 빈집을 나와 찾아왔던 길을 되짚었다. 그리고 친구가 걸었을 동네의 거리, 대로로 향하는 골목, 함께 저녁을 먹었던 가게를 발걸음으로 재촉하며 눈에 담았다. 맡겨진 오늘의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자 실감이 났다. 이 도시에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문을 열어준 이가 있는데, 그는 걷고 또 걸어 어젯밤 내가 누웠던 그 침대에서 잠을 청할 것이라는 '오랜' 감사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고향이라는 말은 참 오래된 말이다. 발달된 운송수단 덕분에 쉽게 가지 못할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른바 향수라는 감정을 떠올리는 이들이 이전처럼 많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간혹 낯선 친숙함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실로 진실된 것이자 오래된 것이었고 지금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