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미루었던 약속을 늦기 전에 지키려는 마음은 나만 가진 게 아니었다. 각자의 노력은 서로 합이 잘 맞았고 덕분에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절기상 한 달가량 남은 여름이 꽤 길게 느껴지는 데는 무언의 동의가 내려졌던 부분이었고, 한동안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어서 조금은 서두르기도 했을 것이다.
실은 말이 나온 지 두 달이 되어서야 성사된 것이어서 막연하게 떠올렸던 과거의 계획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지긴 했다. 나는 옆 도시로 가는 기차를 눈 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잠시 멍을 때려야만 했다. 요즘 들어 쉽사리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되는 까닭에 어딘가에 화풀이를 하고 싶어 졌고, 내 기분 따라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서 가장 만만한 날씨를 탓하면서 홀로 짜증을 부렸다.
입석마저 매진된, 다음 시간대를 건너뛰고 한 시간 이후의 탑승시간까지 생긴 공백을 메워보려 책을 꺼내 들었다. 진행할 독서모임의 핵심 질문들이 아직 나오기 전이어서 조금 더 집중하는 중이었는데, 역사 내 시원한 공기에 식혀진 몸의 한기가 지나치게 느껴졌다. 정체는 무엇을 엎지른 듯한 상의의 얼룩이었다. 몸과 마음은 다시 약간의 수치심으로 화끈거렸는데, 셔츠의 앞부분이 무엇을 엎지른 것처럼 땀에 젖어있었다.
얼마 전까지 우울에 관하여 상담을 받던 나는, 상담이 종료되고 나서야 인정하기 싫었던 어떤 불안이 내 안에 있음을 받아들였다. 나 자신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울고 싶어 졌는데, 실은 울고 싶은 마음마저도 줄곧 외면해왔다는 직감이 들어 괴로웠다. 더 이상 날 학대하지 말아야지, 더는 날 방치하지 말아야지, 이제는 함부로 날 대하게 하지 않을 거야, 했던 다짐이 서툴렀던 것일까.
그러나 사실 마음을 어렵게 하는 관계를 몇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혼자의 마음으로는 하나의 마음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한동안,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싶은 궁금증보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었나 자책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 상황은 뼈 아픈 교훈을 남겨주었는데, 권력을 가진 이들의 가스 라이팅을 얕잡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함께라는 말을 이용해 영혼을 고립시키는 힘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눈치채기란 어렵다.
그런 까닭에 마음이 회복되면서도 난 여전히, 약자의 자존감을 깎아 본인의 권력욕을 채우며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끝내 벗어난 자신의 용기를 칭찬하지 못했다. 그들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내 입장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자신의 참을성 없음을 지탄하는 게 더 쉬웠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지만 꿋꿋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나눌 대화에서 분명 위로를 얻고, 혼자 고민하며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을 덜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는 하나의 연대이기도 해서, 난 틀리지 않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공감의 울타리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게 조금 덜어졌다 느꼈던 시점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여전히 감정이 끓어오르는 이유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해소할 방법을 찾았구나 싶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도 서로 충분히 공감과 존중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경험이 안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해한다는 말로 심리적 착취를 행하는 이들과 거리를 두며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만한 사람들을 주변에 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에 속한다. 병 자체로도 아프지만 병에 관해 공감받지 못하는 시선으로 이중 고통을 받는 이들은 원치 않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자신을 숨기는 게 일상이 되어서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알아보진 않을까 두려워하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되면서 아픔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네가 마음만 잘 먹으면 된다, 네가 정신상태가 약해서 그런다, 는 쓸모없는 충고를 따르면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무너져내리는 내면만 발견하게 된다.
결국 타인의 섣부른 이해(오해)대로 자신의 정체를 정의하는 데 익숙해지면 문제를 해결하고, 이겨내 살아낼 수 있을 작은 용기마저 잃기 쉽다. 그런데 용기를 앗아가는 이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그들은 너무 쉽사리, 삶의 지지대를 걷어차버리는 말을 한다. 하지만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채는 경우는 드물다.
마지막 상담에서 들었던 치료자의 말 중에 와 닿는 게 있었다. '대희님은 좋은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웠던 부분이고, 그럼에도 다행인 건 내면에 자원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런 심리적 자원을 펼쳐보고 시험해보고 다듬어 볼 기회가 적었던 거죠.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였지만, 이제는 조금 더 좋은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정말 좋은 기회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했다. 그리고 내가 상담하는 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