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해

정체성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을 겪는 분들에게

by 쓴쓴

자신이 믿어 온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믿었던 건강이, 친구가 떠나가고 바라오던 미래가 사라지고 어지러운 세상을 보며 세계관과 가치관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 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도달한다. 사람이 무섭고, 옳지 못한 세상이 원망스럽다. 그런 세상을 이길 힘이 없다는게 한탄스럽고 막상 바꿀 힘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벌이는 일들에 한숨을 쉰다. 저 사람들과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왜이리 가끔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저 사람들도 한낱 사람이어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이다.


열심히 노력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다 헛되었던건가 자문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풍경이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이런 내가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선게 아닐까, 전진해야할까 기다려야할까, 다시 시작한다면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질문 형태로 줄줄이 이어진다.


바보처럼 무턱대고 도전하며 시도해왔던 모든 과거의 결과가 '무'로 돌아간 곳에 서서 다시 공포에 사로잡힌다. 사람의 무기력과 존재의 회의감에 관한 것이다. 정체성을 찾아 걸었고, 찾았다고 생각해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렸던 길이 끊어져있었다고 보았던 건 신기루였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일어나는 요동이다.


생각이 무너지니 세상이 무너진다. 스스로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정체성을 떠나보내야할지도 모르니까. 포기할 때가 왔다. 포기라는 말은 그래서 쉽지가 않다. 거울처럼 뚜렷하게 보이던 자신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서 찢겨지고 남루한 스스로를 마주해야 하는 절망의 상태이니 말이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곳에서 자신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마주한다. 정체성을 찾아 떠나야하는, 실천한 적도 없는데 '무소유의 존재'로 서 있는 자를 발견한다. 행위가 아니라 이미 실존으로 무소유인 인간임을 알게 된다.


조금만, 잠시만 쉬어도 좋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지금 일어서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포기에 얼마나 큰 용기와 아픔이 필요한지 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은 수치심이 무엇인지 안다.


스스로를 본다는 것은 큰 용기이고 겸손이자 통찰력을 의미한다. 자신과 마주해야할 때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정체성과 떨리는 악수를, 하지만 이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는 마음이다. 그러나 답을 섣불리 내리지 않기를 바린다. 사람은 지금 방황할지라도 구체적인 모습이 정해지지 못했을 때에도 소중한 존재이니까. 오늘이든 언제든 자신을 포기해보았던 모든 분들이 잊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