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들어선 모퉁잇길

바보라고 당당히 말하기

by 쓴쓴

지도와 나침반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는 나침반을 하나 들고 다닌다. 북쪽을 가리키는 일반 나침반과는 달리 소유한 사람이 가장 바라는 대상의 방향을 알려준다. 진귀한 보물이나 감춰진 전설의 장소를 찾는 장면에 등장하는 이 나침반 덕분에 해적들은 자주 싸움을 벌인다. 해적들이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전투로 영화에 감칠맛을 더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나침반은 이야기의 항해를 이끌어 가는 숨은 공신이다.


이 신기한 도구에는 안타깝게도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소유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선택한 시대적 배경에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도구는 따로 있다. '지도'와 '망원경'으로 밤에는 별자리, 낮에는 멀리 있는 육지를 보고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무인도나 처음 와 본 곳에 버려지면 위치를 몰라 지나가는 배에 구걸을 해야 했다.


시대가 흘러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적들의 배에 실려있던 지도나 나침반은 실제로 신식 장비로 바뀌었다. 최소한 그 '나침반'같은 도구를 차지하려 해상에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진귀한 보물을 빼앗으려는 해적들이 있지만, 더 이상 보물의 위치를 몰라서 사람을 노략하거나 보물이 그려진 지도를 탈취하려고 활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GPS 위성의 신호까지 받아주는 내비게이션이 있기 때문다.



지도가 필요 없는 시대


배뿐만이 아니라 비행기, 자동차 등 웬만한 탈 것엔 내비게이션이 있다. 지도가 없어도 그만이다. 덜 직관적인 지도의 사용법으로 비교해봐도 내비게이션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도는 축적이니, 몇 번 국도이니, 색깔과 선의 의미니, 종이에 기록된 함축적인 의미와 약속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화면에 떠 있는 눈 앞의 지도는 매우 직관적이어서 손가락 몇 번과 몇 차례의 실수만 있으면 곧바로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지나치게 사사건건 '말해주는' 내비게이션의 특징이 용하기에 유일한 단점이다. 그러나 익숙한 길보다는 초행길에서 이 단점도 빛을 발한다. 조심히 다루고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대부분의 길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이 기계는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도 알려주어서, 아차 하는 순간 카메라에 적발이 되더라도 최소언제 어디서 찍혔는지는 알아챌 수 있다.



오류의 내비게이션


아무리 빨리 발전해도 길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현 내비게이션 시스템에는 태생적인 맹점이 존재한다. 정보를 새로이 넣어주는 업그레이드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오래도록 새 정보를 받지 못한 기기는 운전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 내비게이션 말만 믿고 한참을 달렸는데 절벽이 나왔다거나 좌회전하라고 해서 따라 했더니 막다른 골목길이 나왔다거나 하는 웃지만은 못할 일화가 종종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나설 차례가 왔다. 운전자는 역시 멍청한 기계 따위에게 내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크게 뜬다. 오감에, 육감까지 끌어올린 붉은 얼굴은 곧 길을 찾아낼 것이라는 미래를 예견하는 것만 같다. 마침내 운전자가 창문을 내린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다. '아저씨! 여기 근처에 ##아파트가 어디 있나요?'



실수하는 사람


친절한 아저씨의 말을 따라 차근차근 직진하는데 시야에서 고층건물이 점점 사라다. 아저씨가 잘못 안 건지, 내가 잘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잃은 길을 되찾을 수 있느냐, 다. 약속 시간은 다 돼가는데 길에 사람은 안 보이고 결국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그러다 아낸 경험이 몇 번 있으니까요. 아 저기 약속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좀 전에 도로 하나를 더 세었나 보다.


주어진 정보가 명확해도 추측하는 능력이 그대로일지라도 사람의 예측은 종종 빗나다. 그래서 실수가 없는 기계에 자주 의존한다. 그런데 기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유 모르게 일어나는 오류나 정확하지 않는 정보, 혹은 부족한 정보로는 기계는 올바르게 예측하지 못다. 주어진 것 이상을 생각해내고 지우고 새롭게 창조하는 창발성의 영역은 사람에게만 있으므로.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기계를 선택하며 또 하나의 실수를 저지른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한 까닭이다. 더 정확한 지표, 더 많은 정보, 더 풍부한 자원과 그것을 해석해낼 더 정밀한 (사람이 아닌) 기계가 있으면 완벽한 선택을 해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계에게 복잡한 길 안내를 맡겨도 여전히 결정권을 넘겨주지 못하는 운전자가 더 인간적이다. 새로 생긴 곳을 찾아갈 때 길을 찾지 못하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생기는 당혹감이야 말로 인간답다.



사람의 길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자신이 길을 찾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한 두 명 정도는 만날 수 있다. 이 분들은 어리석을 수는 있어도, 동행자의 조언과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분들보다는 더 사람답다. 다듬어지지 않는 고집은 아집과 독선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그런 의지를 팔아버린 사람은 기계와 같을 뿐이다. 기계는 처음부터 의지가 없으니 말이다.


여러 도움과 조언을 무시하는 경우는 정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을 보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곳이라는 생각 덕분이다. 더 막히는 길, 더 넓은 길, 쉽게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도로변, 잠깐 정차할 수 있는 자리 등 비슷한 장소에 자신의 의도를 반영할 길을 찾아.


사람은 길을 택하는 존재다. 필요하다면 길을 만들기도 하며 자신의 의도와 선택의 의미를 충족시다.



길을 걷는 존재


누군가 그랬다. 길은 처음부터 나 있는 게 아니라, 자주 걸어가다 보니 생긴 거라고 말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현대적 의미의 도로도 당된다. 그래서 터널도 뚫고, 고가도로도 놓는다. 더 신속하게 원하는 장소에 가깝고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로를 손보고 넓히고 새로 만든다.


이런 인간에겐 여전히 자신들이 발명해낸 놀라운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길이 있다. 우리 내면에 나있는 길과 눈 밖에 아직 보이지 않는 길이다.


생존을 위한 조건이 충족된 삶에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보이지 않는 미래에게 다가서게 해 줄 8차선 도로를 만들어낼 법은 여전히 없다. 갈대에 부는 바람처럼 제멋대로인 사람의 마음은 예기치 못한 일과 이유도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각자가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자신만의 길을 매일 선택해야 하는 까닭다. 실수가 반복될지라도 말이다.



용납되지 않는 실수


미래를 향해 내딛는 모든 걸음이 평온한 오늘을 연장해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은 인생을 살아가며 알아가는 뼈아픈 현실이다. 그래서 큰 실수를 저지다.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실수라고 불리는 모든 대상을 가능한 대로 제거하는 방법을 찾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실수라는 개념을 바꾸어 버린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그 대상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선행학습과 과도한 학습량에 시달리게 된 사회가 조성된 까닭은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어른들의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실수를 제거하는 방법을 후대에게 적용했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고민은 많은 시행착오를 만들어내는 실수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고귀함이 더 높은 시험 점수가 되다 보니 구는 인간관계라는 이름으로 계획표에 포함되기도 한다. 놀고 쉬는 시간마저도 누구와 보내느냐로 질과 양을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보게 된다. 이것은 서로를 예비 실수로 지목한 거나 다름없다. 실수하는 사람에서 실수의 사람, 곧 실수 그 자체인 사람으로 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로를 무릅쓰고서라도 자기계발에 목을 매는 이유같은 맥락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실수가 주는 불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남들보다 더 적은 실수를 가진 사람이 되려는 현상이다. 어차피 완전해질 수 없으리라고 결론이 나온다면 다른 이들보다 적은 결점을 가진 존재가 되기로 한다.


결점이 없는 상태에만 집중하면 암묵적으로 정해진 정도를 걷지 못하는 상황은 모조리 실수를 하고 있는 상태로 곧 정의된다. 이런 결정은 같이 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의 길'에 대한 한 모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을 '실수 쟁이'로 편입시켜서 실수로 살아가는 존재가 대부분인 사회로 귀결시킨다.



우리에게 실수가 필요하다


사람의 길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다. 그중 꽤 많은 부분은 자신의 실수로 채워진다. 그런데 그중 많은 부분은 사회에 물의(게다가 그럴 힘이나 영향력도 없지만)를 일으키는 행동이 아다. 혼자 부끄러워하고 말만 한 그런 기억들로 누군가에게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실수가 용납되지 못할 상황은 자주 있지 않다. 오히려 자주 모든 일에서 용납하지 못할 부분을 찾는다.


이렇게 완벽해지려는 노력 이면의 뒷 이야기가 자주 언급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생물학적, 경제적 이유, 그 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의 당위성을 찾아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이유를 찾기보다 이런 자신의 습관적인 모습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 결점이라 여긴 것을 지워내도 인간답다는 행복을 느끼지 못다.


실수는 결점이 아니라 틈이기 때문다. 쉬어가는 시간이다. 여유를 만들어내는 여유다. 넉넉함의 여왕이고 배려와 자비를 형제로 두었다. 실수가 난입한 곳에서 사람의 성숙이 도리어 빛을 발한다.


수는 항상 후회로만 남진 않는다. 완벽하지 못한 행동 덕분에 혹은 때문에, 내 의지로는 전혀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를 놀라움으로 목도한다. 두고두고 웃을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재미있는 일화를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메워주는 타인의 도움과 따스함을 느끼기도 한다. 의도치 않은 우연이 빚어낸 결과와 바보의 이야기가 가끔은 인생을 더 빛나게 해준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바보들을 끌어안는 또 다른 바보들의 이야기 덕분에 실수로 끝맺어지는 인생이 아니라는 결과를 보게 다.



바보들의 행진


우리의 인생에는 똥고집을 부리다 길을 잃던 사람만 등장하지 않는다. 밥을 태워먹고 접시도 깨 먹는 시절도 나타난다. 카드도 잃어버리고 통째로 지갑도 놓고 온다. 정말 내 일을 찾았다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거기까지였던 경우도 있다. 허탕한 웃음이 나온다.


실수로 되려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누군가의 도움이 이렇게 절실할 수가 있을까. 가족, 친구,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혼자 살 수 없다는 진리를는다. 계획대로만 사는 이는 타인과 마주할 일이 없다. 계획대로, 그런 삶은 이미 불가능하기에 같이 살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더 나아가, 정해진 철로만 따라가는 삶에서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인간관계라는 경직된 느낌을 넘어서는 만남이라는 관계로만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가 나타날 테니.


자신의 결점은 새옹지마가 되어 다른 실수 쟁이를 통해 덮어진다. 좌절이나 절망과 같은 어두운 감정과는 달리 기쁨이나 감사라는 감정은 의도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뻐하거나 감사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의지와 믿음에 가깝고, 되려 스스로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머무를 때가 많지만 갑작스레 나타나는 인생의 어둠과 이를 비추는 빛은 자신의 계획과는 별개다. 빛을 얻기 위해 실수하려는 시도를 계획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길은 계획으로만 걸을 수 없고 시도치 않은 실수 덕분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 그리고 모퉁잇길


길이 종종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도 다. '실수로, 미끄러져서, 안타깝게도, 잠깐 정신을 놓아서'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또 자책다. 아쉬움에 골목길 끝을 보다가 왼쪽 모서리에서 다른 이의 오른쪽 얼굴이 툭 튀어나온다. 다른 길이 있다. 실수로 들어선 곳에 이전에 보지 못한 길이 있다.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세 갈래로 나뉜 모퉁이다.


만약 실수로 막다른 골목까지 걸어가 보았다면 잠시만 쉬어가기를 바다. 그래서 그곳이 정말 끝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지를 확인해보길 응원다. 그리고 만약 그 실수를 지켜보고 있다면 잠깐만 길에서 비켜서 주시길 바다. 아직 누구에게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사람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이상 실수는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잠깐 옆으로 비켜서서 곧 걸어야 할 사람의 가려진 시야를 열어주시기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