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은밀한 취미
10년 전, 나는 사주를 소개팅만큼이나 정성 들여 보러 다녔었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은밀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유명하다고 하면 지방까지 내려가 사주를 보는 사람, 신상 맛집 오픈런처럼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만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방송작가라는 것.
마흔이 넘은 한 선배는 결혼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사주에서 시키는 대로 살았다. 새벽 3시, 도로를 향해 달걀 네 개를 동서남북으로 던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지 못했다. 몇 년 뒤, 내가 그 도로에 서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방송작가 생활이 10년을 넘기자, 나에게는 애지중지하는 파일 하나가 생겼다. 한글 파일로 정리한 ‘사주 족보’였다. 철학원은 물론이고, 타로, 신점, 해외 점술까지 지역별로 정리해 두었다. 전화 사주가 가능한 곳, 세 명만 모이면 출장 오는 선생님의 연락처도 빠짐없었다. 신점과 사주를 패키지로 볼 수 있는 곳에는 별 네 개를 쾅쾅 박아 놨다. 섭외 리스트를 만드는 노하우를 이 파일에 쏟아부었다.
이 족보는 업계에서 은근히 유명해졌다. 일면식도 없는 예능, 시사, 드라마 제작진에게서 “요즘 용한 데 어디냐”라는 전화가 왔다. 신년이면 연예인 사주 풀이가 단골 아이템이었고, 간혹 실종자 행방을 묻기 위해 무당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 쪽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생년월일시를 넣고 연기 궁합을 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운도 미리 맞춰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논리를 따지다가도 ‘큰돈’ 앞에서는 우주의 기운까지 끌어오고 싶어진다.
내가 사주를 보며 묻는 건 늘 세 가지였다. 건강, 직업, 연애. 결혼 전의 프리랜서에게 이 셋은 거의 생존 조건이었다. 특히 일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직업운은 매번 빠지지 않았다. 사주를 보러 가는 날은 미래를 확인한다기보다, 망둥어처럼 뛰어다니는 불안을 잠시 잠재우는 날이었다.
어느 주말, 사주와 신점을 함께 본다는 족보 23번을 찾았다. 하얀 한복에 쪽 찐 머리를 한 여자와 지나치게 평범한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후배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데요. 제가 그만둬야 할까요?”
“네가 왜 그만둬? 너는 버텨. 혹시 후배들 성 이니셜이 K, L, S야?”
여자 선생님과 대화하는데, 그때까지 말이 없던 남자 선생님이 낮게 말했다.
“너 얼른 나가라 하시네.”
“누...가요?”
“장군님이시지! 장군님이 노하신다!”
두-둥. 알고 보니 쪽 찐 머리의 그녀가 아니라, 이 평범한 사내가 무당이었다. 실제로 내 속을 썩이던 후배 중에 K와 S가 있었기에 소름이 돋으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자신이 내 액운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어서 그동안 말을 못 했다고 했다. 장군님이 노하셨다는 호통에 나는 더 묻지도 못하고 반쯤 쫓겨나듯 나왔다. 점괘가 잘 나온다기에 이른 아침 예약까지 하고 갔는데 허무했다. 오후에 잡아 둔 타로 상담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이 은밀한 취미를 정리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사는 게 도무지 풀리지 않던 어느 날, 덕후 언니가 말했다.
“이 사람은 찐이야. 예약도 안 돼. 무조건 가서 기다려!”
강남의 후미진 골목 끝, 사주를 잘 본다는 커피숍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돌다 보니 0.5평도 안 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흰 가림막 안에서 한 여자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논하고 있었다. 번호표를 쥔 사람들은 기린처럼 목을 빼고 기다렸다. 커피 한 잔에 만 원. 사주 값은 별도였다.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먼저 쓰렸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은 말은 너무 간단했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든데, 계속 다녀야 할까요?”
“버티는 게 좋아. 올해 무탈하네. 사고도 없고. 연애도 곧 할 것 같네.”
그 말을 들은 지 딱 열흘 뒤,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차장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꺾었고, 벽에 부딪혔다. 에어백이 터지며 턱이 날아간 줄 알고 정신이 아찔했다. 사고 일주일 전, 차량 점검을 마친 상태였는데도 브레이크는 무용지물이었다. 뒷목이 서늘해졌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는데 내 마음과 몸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쩌면 사주에서 말하는 운명보다 내 마음의 허기가 더 시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았다. ‘무탈할 거라던 해’는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다. 사실 퇴사를 결정만 하면 될 일을, 아니 그 결정은 이미 마음속에서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답을 물으러 다녔을까. “너 회사 좀 쉬어도 돼” 이 말을 누군가의 입으로 대신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돌이켜 보니, 사주는 남 이야기할 때만 미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사주와 영영 이별했다. 혹여 마음이 약해질까 봐 족보도 삭제했다.
이제 더 이상 “괜찮아”라는 남의 말 한마디에 내 삶을 맡기지는 않는다.
"너무 애쓰지 마, 괜찮아"
그 말만큼은 내가 나에게 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