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를 업으로 삼으며 품어온 유일한 로망은 뜻밖에도 '맛집 방송'이었다. 그 안에는 맛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서브 작가 2년 차에 한껏 기대감을 안고 맛집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다.
보양식 특집이라도 잡히는 날엔 파닥거리는 장어와 산삼을 공수하느라 진을 다 뺐지만, 그래도 설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는 '명절 음식 명인‘이었다. 그중 시장에서 부침개 하나로 주름잡은 여든의 할머니가 출연하기로 했었다. 메일은커녕 팩스조차 낯선 분이라 사전 인터뷰를 하거나 대본을 전달하려면 시장통 상인회로 달려가거나 직접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할머님, 이건 MC 질문이고 이건 답변이에요.“
대기실에서 손을 맞잡고 대본 연습을 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할머니의 입담은 오래된
된장으로 맛을 낸 찌개처럼 구수했고, 시청률은 이미 보장된 듯 보였다.
이제 녹화만 탈 없이 진행되기만 하면 된다!
90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토크와 조리를 끝내야 하는, 사실상 '생방송' 현장과 다름없었다. 작가들은 조리실과 스튜디오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반조리된 재료들을 날랐다. 기름 냄새와 열기가 스튜디오 천장까지 꽉 찼을 무렵, 사건이 터졌다.
"철판이 영 파이라. 나 이거 안 할란다."
전 부치는 데 평생의 자부심을 걸어온 노점의 여왕이 뒤집개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공수해 온 철판은 매끄럽고 번듯한 새 제품이었다. 하지만 셰프에게 칼이 몸의 일부이듯 할머니에게 투박한 철판은 길들여진 손바닥과 같았다. 무쇠의 결마다 스며든 세월의 기름때. 그 '손에 익은 감각'이 거세된 새 철판은 할머니에게 그저 차가운 쇳덩이일 뿐이었다.
메인 작가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방송 사고의 전조였다. MC가 능글맞게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할머니는 멍하니 철판만 응시하다 쐐기를 박았다.
"철판이 맘에 안 들어서 맛이 안 나."
급기야 녹화가 중단됐다. 작가 넷이 달려들어 할머니를 달래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화면에 예쁘게 담길 '방송용 음식'을 만들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진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겉보기엔 노릇하게 잘 익은 전이었지만, 할머니를 통과할 수 있는 합격점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늘 시간을 맞추느라 바빴다. 그분은 단 한 번도 대충 맞춰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 대본을 쓰다가 막힐 때면, 내가 쓰는 글이 단순히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한 글'인지, 아니면 '진심을 다한 글'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