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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인걸

by 잠잠하게


넬의 노래 중 <Limitation>이란 곡이 있다. 연인에게 울분을 토로하는 듯한 노래인데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 연인에 대한 태도가 냉랭하고 담담하다. ‘나에게 얼마나 더 바라느냐’라며 따지는 듯한 가사에서 그동안 발라드 노래에서 듣지 못했던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한계에 다 달랐을 때 낙담해 포기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게 인간의 조건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제 신께 기도한다.

하지만 상황이 극복되고 자신에게 편리하고 이로울 때가 되면 다시 신을 찾지 않는다. 고통 중에 있을 때만 기도하는 게 인간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고통에서 구원해 줄 신이 있다는 믿음으로 종교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제 한계에 왔다. 하지만 그 한계가 아직 끝이 아닌데 스스로 판단해 무작정 신께 의지해서는 안된다. 이것저것 더 해보고 진짜 한계까지 가야 한다. 모든 상태에 희망이 없는 상태, 그 상태에 이르러야 신은 현실을 바꿔 줄 수 있다.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은 운에 맡겨야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흔한 운이 진짜 운이 아닐 수 있다. 신의 자비가 드러나는 운은 다른 이름으로 기적이라 부른다.


기적은 무엇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질서에 잠시 신이 개입하는 것이다. 기적은 잠시 뒤 본래 데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으며 우리에게 이내 잊히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기적을 체험하고도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게 정상적인 이치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데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자연의 법칙상 내가 원하는 데로 안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내 생각과 달리 상황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신께 기도할 자격이 생긴다. 잠시간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그러면 어쩌면 잠시 세상을 거스르는 기적을 일어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그 신께 기도한다. 나는 오히려 그 한계에 이르고 싶지 않다고 그 단계에 가기 전에 마무리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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