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아내 사촌 오빠의 자녀 결혼식이다.
보통 이럴 때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쭈뼛쭈뼛 조용히 결혼식을 보고 밥만 먹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결혼식은 지루하기보다는 재미가 있었다.
주례가 없는 건 익숙하다. 요즈음은 식도 간단하게 하고 주례 같은 지루한 순서는 넣지 않으니깐.
그런데 신랑이 입장하면서 훌쩍거린다. 보기 드문장면이다. 반면 신부가 같이 걸어오면서 웃으며 신랑 눈물을 닦아준다.
내가 알던 남성과 여성상이 바뀐 것 같다. 이어 친구가 축가를 불러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노래를 잘 못한다.
그래 뭐 이것도 그럴 수 있지 했다.
이어 주례대신 진행되는 양가 아버지들의 덕담 시간이다. 특히 신부 측 아버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딸이 이렇게 잘 자라게게 도와준 딸의 친구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 출석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숙자야 중학교 때 흔들리는 민경이를 잡아줘서 고마워. 왔지?”이렇게 말하면 한쪽에 “네”하고 발랄하게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도와준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사회생활하면서 친했던 모든 친구들이 호명됐다.
사실 나는 이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한 아이가 자라기까지 도와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와닿아 찡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결혼하기까지 부모의 덕만이 아님을 고백하는 자리다. 자신의 딸이 잘 자라 이렇게 결혼하기까지 도와준 많은 이들에게 정성을 들여 감사를 표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결혼식의 의미를 더 진정 와닿게 하는 게 아닐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났다.
마치 가족이 재기 발랄한 마을 축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도 이 축제를 기분 좋게 함께 웃으며 즐겼다. 그래 이게 결혼식이지, 그래 이게 축제지하며 생각했다.
양가 인사 때 신랑이 또 눈물을 흘린다. 손님들은 또 한 번 웃는다. 13년을 사귀고 결혼하는 커플이라 그간 마음고생이 생각나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신부는 웃으며 신랑을 토닥여준다. 씩씩하고 패기 있는 신부에게 더 눈길이 갔다.
마지막 축가는 신랑 신부가 함께 부른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기대했지만 역시 반전, 신부는 올리가지도 않는 음높이를 생목으로 부르고 신랑은 저음으로 음을 더 이상 높이지 못한다. 그들의 듀엣송은 마치 개그와 같았다.
C.S루이스가 <예기치 못한 슬픔>이란 책에서 결혼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남녀가 한 몸이 되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했다. 가령 여성성을 가진 남자과 남성성을 가진 여성이 결혼해서 조화를 이루어도 괜찮다는 뜻일 것이다. 마치 이 커플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문득 우리 딸들이 시집갈 때 난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가 얼마나 더 늙어야 저 자리에 설까를 씁쓸하게 계산했다. 조금씩 그 감정이 느끼는 나는 얼마나 성숙히지고 있는 걸까. 나도 꼭 이런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우리 딸들을 만들어준 주변 지인께 감사하는 자리를 꼭 결혼식에서 마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