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일. 물 잡기란 무엇인가

by 속삭이는 물결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고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다. 매우 지침. 힘이 하나도 없다. 너풀너풀. 오늘은 3분 지각이다. 다행인 건 출석률이 조금 낮다는 것. 아니, 피곤하니 쉬어갈 수 없어서 불행인가? 아무튼 발차기 하나씩으로 시작. 선생님은 오늘도 초급반을 봐주시느라 바쁘셨다. 요즘은 발차기를 할 때 최대한 헤드업으로 하려고 한다. 한 바퀴씩밖에 못 하니까 단기간에 더 큰 운동 효과를 내려고 말이다. 그래도 참 신기하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헤드업으로 하면 허리가 아파서 뒈질 것 같았는데, 이제 허리가 아픈 증상은 사라졌다. 코어 힘을 이전보다 꽉 주고 있나 보다.


발차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인원수를 세더니 풀부이를 가져오셨다. 풀부이로 어떤 연습을 하게 될까? 두근세근. 선생님은 풀부이를 허벅지에 끼고 발차기 없이 팔로만 자유형을 하라고 하셨다. 팔 힘만으로 물 잡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호흡 방식에 따라서 몸이 좌우로 기울거나 아예 뒤집어질 수 있다고도 하셨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이게 끝! 나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연습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뭐라고 꽤 익숙했다. 그러나 오른쪽 팔뚝이 어제부터 뻐근했는데 오늘은 정말 대박적으로 아팠다. 발차기 없이 팔 힘만으로 왔다 갔다 하려니 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뭐 그랬다.


이번 달에 처음 본 어떤 할머니가 내게 물이 무섭냐고 물었다. 아니요? 더 자신감 있게 쭉쭉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주셨다. 안 물어봤는데... 내가 팔이 계속 구부러졌나 보다. 너무 힘들어서 뒤로 갈수록 속도도 안 나고 거의 반 포기 상태로 했더니 그 모양 그 꼴이 됐나 보다. 당황스러웠지만 아무튼 다음에는 알려주신 대로 해보겠다고 대답해 드렸다.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서인지 4개월을 쉬셨다고 한다. 아직도 무릎이 좋지 않아서 계속 쥐가 난다고 하셨다.


자유형 3바퀴를 돌고 나서, 배영과 평영도 팔로만 3바퀴씩 돌았다. 배영을 할 땐 엉덩이만 아래로 축 처져 있는 느낌이 났다. 그러니까 엉덩이가 빠져 있어서 그 상태로 힘을 꽉 주다 보니 고관절 안쪽이 엄청나게 당겼다. 두 바퀴째, 세 바퀴째는 조금 각성하고 엉덩이를 더 들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내가 롤링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 맞겠지? 다른 설명은 없었다.


평영을 할 땐 약간의 설명을 주셨다. 평영 스트로크만으로는 앞으로 나가기 힘드니 천천히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핸즈온을 해주셨다. "천천히"라고 말씀하시면서 팔 돌리는 걸 잡아주셨다. 한 바퀴를 돌고 오니, 선생님이 단체 코멘트를 주셨다. 평영은 글라이딩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팔만 빠르게 반복적으로 돌려선 나갈 수 없으니 천천히 크게 물을 잡은 다음에 글라이딩을 하며 쭉 뻗어나가라고 말이다. 팔 힘이 이미 빠져서 물을 세게 잡진 못했다. 물 잡는 동작이 생각보다 크게 나오지도 못했고, 하체를 풀부이 하나에 의존하다 보니 몸이 양옆으로 기우는 걸 방지하느라 팔 동작의 정교함도 더 흩트려졌다. 속도는 정말 느렸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오지 않으셨지만, 다른 분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니 평영은 킥으로, 접영은 풀과 웨이브로 하는 거랬다. 초보한텐 뭐가 더 중요하다 말할 것 없이 다 골고루 갖춰야겠지만. 하여튼 모든 말이 맞는 말이다. 어쨌든 킥 위주로 연습하다가 오늘은 내내 스트로크 연습만 하니까 뭔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다. 중간에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풀부이를 허벅지에 끼고 양팔 접영을 해 보았다. 킥 없이 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었다. 스트로크 연습만 한 보람이 생긴 걸까? 생수병 들고 팔 운동을 하는 건 고작 하루밖에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 팔 접영을 할 차례. 갈 때는 오른팔, 올 때는 왼팔로 두 바퀴 돌라고 하셨다. 이미 수업 시간이 4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른팔 접영은 이제 제법 하는 것 같다. 반면 왼팔은 힘들다. 왜냐면 토요일밖에 왼팔 접영을 연습할 기회가 없으니까? 오늘은 정말 심각하게 힘이 하나도 없어서 더 망했다. 물도 몇 번 먹은 것 같다. 한 바퀴 반을 돌았을 때 마무리 체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팔 훈련은 많이 했지만 배운 건 매우 적은 하루가 지나갔다. 아니, 남은 하루는 길지. 밥 먹을 힘도 없어서 일주일 전에 갈아놓은 복숭아 주스를 마시다가 허망하게 다 쏟아버리고, 주스가 떨어지고 튄 바닥과 요가 매트, 책, 가구 등을 닦느라 더 피곤해졌다. 그렇게 쓰러져선 꿀 같은 낮잠을 취하고 오후 일정을 소화하러 떠났다.


이제 진짜 수영 일기가 일주일 남았다. 만 4개월을 딱 채우고 끝내게 됐다. 돈은 4.5개월치 지불해야 했지만. 무용도 다시 배우고 있지만, 무용은 이미 하던 습관 따위가 있어서 수영을 배울 때만큼 초집중을 하진 않는다. 선생님의 코멘트라던가 그날 배운 것들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이 고차원적으로 많은 탓도 있지만. 그래서 처음이란, 초보란 참 소중한 여정이다. 남은 한 주도 처음처럼, 순수 가득한 마음으로 버텨보자.


자정이 넘었는데 나는 왜 커피가 마시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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