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음-파-음-파- 숨쉬기부터 발차기까지

by 속삭이는 물결

공중목욕탕도 잘 안 가는 내가 수영 강습이라니. 하지만 너무 오래된 버킷리스트다. 수영장 들어가기 전 샴푸, 샤워, 양치가 필수라는 정보를 유튜브에서 미리 보고 가지 않았다면 겁도 없이 대충 물만 적신 채 들어갔을 거다.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수영 등록도 겨우 용기 내서 했는데. 첫 수영 강습을 앞두고 마음이 이상했다.


탈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벌거벗은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로 가득하다. 민망하면서도 부끄럽고.. 엄청난 뇌내 지진이 일어났다. 탈의실에서부터 탈의를 해야 샤워실에 입장을 할 수 있으니, 옷을 안 벗을 수도 없고, 속옷이라도 입고 샤워실에 들어갈까 했는데 그럼 속옷이 다 젖을 테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닌다.


어차피 다 까발려질 맨몸,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떨리는 마음으로 벌거벗고 샤워실에 입장해서 겨우 머리카락과 몸을 대충 씻었다. 이제 수모를 써야 하는데, 수모가 드럽게 안 써진다. 제품 설명서에 적힌 대로 손을 오므려 넣어가며 해봐도 여러 번 실패. 써지지도 않고, 이리저리 튕기기만 한다. 그냥 포기하고 막 써보지만 이것도 어렵다. 겨우 겨우 머리를 씌우고, 수경도 유튜브에서 본 대로 머리 위에 잘 쓰고, 귀마개까지 하고는 수영장에 입장. 수영장과 샤워실 사이에는 벽걸이가 있어 물품을 보관할 수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지각이 분명한 것이 이미 모두가 물속에 들어가 대열에 맞춰 자리를 잡고선 한참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엉거주춤 계단을 내려가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첫 번째 레일에 들어갔다. 할머니들이 조금 쳐다본다. 지각생이니까 당연한 시선이다. 시계를 봤더니 겨우 1분 지각이다. 이렇게들 열심히 하고 있구나. 구령을 외치며 스트레칭을 알려주고 있는 선생님은 시원한 스트레칭을 골고루 시키더니 이어서 잠수와 점프를 시킨다. 갑자기 잠수를 하라고..? 말소리도 잘 안 들렸는데, 초보 주제에 감히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 뛰는 척만 겨우 했다. 뛰면서 박수를 치라고 해서 더 당황했다.


준비 운동이 끝나고 이제 본격 수업이 시작되는 것 같다. 체조를 알려주던 선생님 옆에서 방황하는 듯 보였던 다른 선생님이 있다. 이 안경 쓴 선생님을 기준으로, 내가 서 있던 레일을 포함해 좌측에 서계시던 분들이 모이고, 준비 운동을 시켜준 선생님을 기준으로 우측에 서계시던 분들이 모여서 핸드 패드를 나눠 갖는다. 아무래도 좌측에 계신 분들은 패드가 필요 없나 보다. 내가 뜨내기 같아 보였는지 안경 쓴 선생님이 오늘 처음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수영도 처음이냐고 묻는다. 당당하게 그렇다고 하니, 오른쪽 구석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선생님이 가리킨 곳은 너무 모서리인데..? 저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야 하나..? 싶었지만 저기 계신 다른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라는 거겠지 싶어, 엉거주춤.. 발걸음을 옮긴다.


선생님이 대체로 할머니인 수강생들에게 뭐라 뭐라 안내를 한다. 가운데 레일엔 유일하게 젊은 남자 수강생이 있었고 혼자 레일을 쓰고 있었다. 수강생들의 수준에 맞게 연습해야 할 동작을 알려주는 것 같다. 레벨이 다 다른데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 강습이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모두가 선생님의 말에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 연습을 시작하자, 선생님이 그제야 돌아서서 나에게 등록한 후 처음 왔냐고 묻는다. 처음 온 게 맞으며, 수영도 아예 처음이라고 하자 살짝 당황하는 눈치다. 일단은 저쪽으로 가자고 한다. 유리벽을 너머 수상한 곳에는 물이 얕아 보이는 풀이 하나 더 있다. 수심이 매우 얕은 어린이 풀인 것 같았다. 유리에 습기가 차서 이상해 보였지, 전혀 수상한 곳이 아니었다.


맨 처음 수영장에 들어가는 방법부터 알려주셨다. 일단은 엉덩이만 걸터앉아서 몸의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두 손을 모아서 짚은 채로 몸을 반 바퀴 돌려서 입수하는 거라고 한다. 벌써부터 어려운 느낌이다. 긴장한 나는 더 긴장을 했다. 그다음 물 밖으로 나오는 방법도 똑같다. 두 손으로 턱을 짚고 몸을 회전시켜서 엉덩이로 앉는 것이라고 한다. 두 다리를 따로따로 벌려서 나오면 얼마나 없어 보이겠냐고 하시면서 말이다. 나름의 웃음 포인트를 주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웃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엉기영차.. 앉는 법부터 자신이 없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진도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숨 쉬는 법이다. 우리에겐 아가미가 없으니 물 안에선 내뱉기만 하고 물 밖에서만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마스크를 벗고 푸 하 푸 하 시범을 보인다. 그 입 모양이 굉장히 작아서 생경하게 느껴졌는데, 이유가 있었다.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보았더니, 이렇게 숨 쉬면 덩달아 힘들지 않겠냐고 하신다. 그래서 작게 쉬어야 한다고 말이다. 눈높이 맞춤 교육이다.


또 내쉬는 게 훨씬 더 길어야 한다고 하신다. 내쉬는 동안 숨을 참는 한이 있더라도, 내쉬는 시간이 더 길고, 물 밖에서 들이마시는 건 매우 짧은 순간이라고. 대신 물에서 나오자마자 코로 들이마시면 콧가에(?) 머무르고 있던 물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서 큰일이 날 수 있으니 밖에서는 입으로만 숨을 쉬라고.


잘 따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현타가 세게 왔다. 그런데 익숙해지기도 전에 물속에 들어가서 연습해보라는 게 아닌가. 물속에서 들어가 음-----, 물밖에 나오자마자 파--. 바보 같은 흉내를 내는데 나의 문제점을 단번에 간파하시곤 숨을 작게 쉬라고 하시면서 입은 살짝 열려도 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내가 귀마개를 하고 가긴 했지만, 귀까지 푹 담가도 달팽이관 때문에 물이 들아가진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셨다. (아까 처음 본 젊은 남성 외엔, 나만 귀마개를 하는 것 같긴 했다.) 귀까지 푹 담가서 숨쉬기를 연습하는 것을 반복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연습하고 있으라고 하더니 큰 풀로 나가셨다. 단체 수업인데도 내가 초보라서 나만 이렇게 다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신 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속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단시간에 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시계가 없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셔서 이제 많이 익숙해지신 것 같다며 다음 과제를 알려주셨다.


벽을 등지고 앉아서 한쪽 발로 벽을 뻥 차고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나아가는 동작. 나중에 알려주셨는데 이걸 글라이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발로 차고 쭉 뻗어나갈 때 고개를 충분히 숙여야 하체가 뜰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으면 그 힘에 의해 몸이 뜬다고도 하셨다. 어차피 이 깊이에선 몸이 가라앉지 않으니 어깨에 힘 빼고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이때도 숨쉬기 연습을 함께 해본다. 물속에선 숨을 참아도 되고 내뱉어도 된다. 쭈욱 나아가는 느낌이 재밌고 좋았다. 혼자 연습하는 시간도 당연히 재밌었다. 배운 것 중에 제일 쉽게 잘 된다.


잠시 후 선생님이 다시 돌아와서 힘들면 조금 쉬라고 말씀해주신다. 내가 너무 쉼 없이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끝없이 움직여야 운동 효과가 좋겠지!?


이번에는 발차기다. 타일에 걸터앉아서 다리를 앞으로 뻗어서 발을 교차로 차올린다. 무릎이나 종아리가 아닌 허벅지 중앙 부분으로 발을 차야 한다고 한다. 이때 엄지발가락은 스치듯이 서로를 향하고 발이 살짝 안짱인 모양이어야 한다. 잘.. 되질 않는다. 발등으로 차올려야 한다. 머리로는 입력해두었지만 발등으로 뭘 어떻게 차라는 건진 와닿질 않았다.


이번에는 엎드려서 연습. 골반을 타일 끝에 걸치고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로 엎드린다. 골반 아래 다리만 물에 잠겨 있게. 이때 얼굴 아래에 물이 흐르는 하수구가 있어서 약간 찝찝했지만.. 열심히 연습하기로 한다. 훨씬 어렵다. 내가 계속 허벅지가 아닌 무릎 아래를 쓴다고 한다. (사실 그럴 거면 발차기가 아니라 다리차기로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용어부터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지만, 몸치의 핑계일 뿐이다.)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열심히 연습을 한다.


그리고 다시 앞에서 배운 글라이딩과 발차기를 함께 해본다. 다리가 여전히 잘 안 차진다. 선생님은 영상을 찍어서 내가 무릎을 얼마나 굽히는지를 폰 화면으로 보여줬다. 허벅지로만 움직이는 게 가능하긴 한지. 나름 허벅지 힘으로는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 요령을 깨우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이걸 연습했는지는, 조금 헷갈리지만. 무척 재미있었고 설레는 강습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선생님도 무척 잘 가르쳐주시고! 그래서 월수금도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수업이 끝났다고 해서 나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수영은 정말 좋은 운동임에 분명하다! 물론 수영을 하는 동안 괴로운 생각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발차기 같은 단순한 연습을 할 때.. 자책과 원망이 상반된 감정, 지난날의 기억이 다시 나를 뒤덮는다. 이걸 이제 다시 샤워로 씻어내야지. 비비의 '비누'라는 노래처럼.


사람의 몸은 모두 몸이다. 육신. 샤워기가 고정돼 있어서 머리를 제대로 감으려면 뒤를 돌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시선이 오고 가기도 하고 나도 그들의 몸을 쳐다보기도 한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풍경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모두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 샤워장에서는 모두 같은 몸인데 속세에선 이 몸에 심미적 등급을 나눠서 어떤 몸이 더 보기 좋은지 대결하고 수익을 내기도 한다. 이상한 세상이다.


잘 씻고 나와서 탈의실로 향한다. 흠.. 그리고 멍청한 내가 물을 바닥에 뿌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서 마음대로 지내던 습관이 그대로 나왔다. 사물함 앞에서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다니. 나는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반성하던 차에 청소하시는 분이 다가오신다.


"이게 뭐야~ 인어공주야 뭐야~" 나는 소심하게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그랬더니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계속 말을 거신다. "수건을 안 가지고 들어갔구나~? 말을 하지 수건은 준비돼 있는데~" 수건을 주나요?라고 되물으니 약간 당황해하시면서 있긴 있다고 알려주신다. 공식적으로 수건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내게 수건을 못 챙겨 왔냐고 물으셨다. 정말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가지고 왔다고, 머리에 두른 스포츠 타월을 보여드렸다. 연신 내가 흘린 물로 농담을 하시길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조금 미안하셨는지 죄송할 일은 아니고~~ 라신다. 내일부터는 수건을 따로 담아서 입구에 걸어두어야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비치된 헤어드라이어로 머리까지 대충 말리고 나와선, 추가 등록을 하러 접수처에 갔다. 여성 생리 할인은 한 강좌에만 해당되기에, 두 강좌를 등록할 때 받을 수 있는 패키지 할인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대신, 기존 강좌 환불은 사무실에 가서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조금 절차가 복잡한 듯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얼마나 쉴지는 모르지만 쉬는 동안 열심히 미라클 모닝을 쟁취하며 살도 빼보겠다! (선생님도 많이 나올수록 좋을 거라고 하셨으니.)


그런데 센터를 나오자마자, 원래 아프던 발이 욱신거렸다. 발차기를 잘못한 걸까.. 결국 이날 오후, 나는 한의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다.. 첫날인데 주제와 관계없는 이야기는 생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