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 힘의 세기를 잘 배분할 것

by 속삭이는 물결

새벽부터 비가 오다 아침에 잠시 그쳤다. 비를 맞지 않고 등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그런데 20m를 채 가지 않아 갑자기 하늘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맑은 날씨와는 크게 인연이 없는 편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실제론 그렇지 않을 텐데, 비가 내리고 말고는 하늘의 뜻이지 내 개인의 영향이 있을 리가 없는데.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 사이에서 오가는 믿음의 문제일 뿐일 텐데. 지난날이 평탄치 않아서인지 좌절하고 자책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서일 텐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이렇게 갑자기 비가 나를 기다린 듯 쏟아지면, 괜스레 이상한 마음이 든다. 분명 날씨 앱에선 한 시간 뒤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나의 오늘 일진이 사나우려나, 운이 따르지 못하려나, 나는 역시 비를 부르는 우울한 사람인가, 하는 불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자신을 날씨의 요정이라고 부르는 지인이 있다. 어딜 떠나든, 자신이 가면 오려던 비도 그치고 해가 뜬다는 것이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믿음이지만, 그 사람을 지탱하게 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그 믿음만큼 강하다는 뜻일 터다. 나도 비를 볼 때마다 서글퍼하거나 처연해지면서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믿는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훨씬 전부터 생각했다. 그럼에도 인생의 흐린 날이 계속되면 이 지독하게 오래된 습관은 다시 찾아온다.


수업 시작 시간까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비가 와서 모두 안 오려나 했는데, 준비 체조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레인 저 끝까지 줄 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어보니 열일곱이나 됐다. 음파 발차기를 시작했으나 가다가 멈추기를 역대급으로 자주 반복했다. 분명 한 바퀴를 돌았는데 숨이 전혀 차지도 않고, 다리도 물장구만 친 것 같았다. 오래 다니신 할머니 한 분은 줄줄이 서서 정체되어 있는 레인 끝에서 “선생이 머리가 똑똑해야지, 다들 열의가 없어. 저기 저 기초 가르치던 선생도 그렇고.”하며 불평을 하셨다. 나는 나긋하고 우아한 말투로 머리가 없다고 뒷담하시는 게 너무 웃겨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심하긴 했다.


분명 선생님도 그런 상황을 모르진 않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제법 방황하는 듯했다. 선생님은 접영까지 배우신 분들은 모두 두 번째 레인으로 보내셨다.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음파 발차기를 연습하는 분들의 속도가 워낙 낮아서 크게 차이는 없었다. 앞사람이 출발하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겨우 부딪히지 않고 레인 끝까지 갈 수 있는 정도. 하지만 나도 불과 한 달하고 보름 전까지만 해도 저랬다. 잊지 말아야 한다. 서로서로 기다려주고 양보해주면서 가야 모두에게 좋다. 물론, 방향 감각이 없고 기다릴 줄 모르고 마구 새치기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음파 발차기는 숨이 찰 때까지 총 4바퀴를 돈 것 같다. 이후로는 거의 자유수영 느낌이었다. 자유형 팔 돌리기도 서너 바퀴는 돌았고, 배영 발차기도 셋, 배영 팔 돌리기도 네 바퀴는 돌았다. 배영은 확실히 지난주나 지지난주보다 훨씬 더 잘 되는 느낌이다.


이제 평영 발차기를 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계속 다른 곳을 서성이셔서, 허락을 구하지 못해 억지로 배영만 더 연습했다. 6분쯤 남았을 때 겨우 선생님이 출발 지점 근처에 계셔서 “평영 발차기 연습해도 돼요?”하고 물었더니, (이미 나를 위해) 헬퍼를 가져다 놓으셨다며 웃으셨다. 서로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굴다가 타이밍이 어긋난 듯하다. 나는 근데 잘 나아가지질 않는다고 하소연했고, 선생님은 처음이니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다. 벽 잡고 발차기 연습 많이 했냐고 물으셨고, 나는 “네 계속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음파 발차기를 하면서 도로가 정체될 때마다 이때다 싶어 엎드려서도 연습했고, 수심 깊은 곳에서 주차 중일 때도 쉬지 않고 벽 잡고 평영 발차기를 연습했단 말이다.


선생님은 “어디 한 번 볼 거예요~ 정말 연습 많이 했는지~”라며 너스레를 떠셨다. 하지만 출발하려고 하는데 다른 분이 선생님께 질문을 하시는 바람에, 출발 대기를 조금 탔다. 그분의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지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속도가 느린 분 뒤에서 출발해 버렸다. 이번 주 초 내내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사골 냄비 속처럼 푸욱 깊게 숙여서 발차기를 시도했다. 속도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긴 했다. 중간 이상 갔을 때, 선생님이 따라오셔선 음파는 하지 말라고, 고개를 들고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면 나아가지지가 않는데요?” 그랬더니 “그래도 지금은 발차기 연습이 더 중요해요”라고 하셨다. 킥판 앞을 잡고 고개를 들고 다시 하기. 이것 참! 분명 또 안 될 텐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킥을 했더니, 웬걸, 고개 숙이고 하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리 힘이 좀 더 세게 들어가는 것 말고는.


선생님은 이어서 “다리를 아래가 아닌 뒤로 찰 것” “다리로 조금 더 반원을 그리려 할 것” 등의 지적을 해주셨다. 내 다리는 계속 가라앉았는데.. 그땐 수심이 깊은 곳이라 다리를 들어 올리기 위해선 잠수 후 점프를 해야 했다. 에고, 굴욕이다. 선생님은 나의 발차기 힘이 약해서 다리가 계속 가라앉으니, 셋까지 기다리지 말고 둘까지만 세고 바로 차라고 하셨다. (발차기를 한 번씩 하라고도 하셨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 못했다.)


내가 발차기를 너무 세게 하고 있을 거란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한테서도 듣고 (나의 수영을 본 적 없는) 지인에게서도 들어서 정말 내 발차기가 너무 센가? 하며 주눅 들어 있었는데, 약하다고 해주시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발차기를 할 때마다 내전근 깊숙이, 고관절 안쪽이 뻐근한 건 여전했다. 발차기를 세게 하는 것도 뭐가 이렇게 걸리는 건지.. 선생님은 나의 발차기를 꽤 오래 봐주시다가, 누군가의 질문을 받곤 자리를 뜨셨고, 나는 그렇게 느리지만 한 바퀴 반을 돌았다. 아주 뿌듯했다! (중간에 내 뒤를 따라오던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정말 열심히 배우시네”라고 하셨다. 내가 쉬지도 않고 초저속으로 연습을 이어가고 있으니 아마 바로 뒤에서 꽤나 답답하셨을 거다.)


마무리 체조가 시작됐고, 선생님은 접영을 연습하러 유아 풀로 유배 간 분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 위해 달려가셨다. 나는 평영 발차기로 중간 지점까지 나아갔고, 그곳에서 마무리 체조를 했다. 더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에 헬퍼도 그대로 착용하고 말이다! 접영 팀은 8분 가까이 설명을 들으셨다. 그 내용도 엿듣고 싶은 성격 급하고 욕심 많은 나.. 접영이 더 재밌어 보인다!


마무리 체조가 끝나고 아쉬운 만큼 더 발차기를 해보았다. 매일 10분 미만의 연습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고개를 들고 차니 중심 잡는 건 훨씬 어렵다. 킥판으로 제대로 지탱하고 있는데도 몸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 것만 같아서 몸에 힘도 잔뜩 주게 되고 다리의 굽혀진 각도도 양쪽이 다른 것이 느껴진다. 최대 난관은 고관절 안쪽에서부터 나오는 어긋난 느낌과 걸리는 듯한 통증이다. 이 못난 골반으로, 계속하다가 골병드는 건 아닐지..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2분 전 상급반 선생님이 “이제 다들 나오세요” 하셨지만 나는 아직 나갈 생각이 없었다. 헬퍼랑 킥판도 가져다 놓아야 하니까,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영차 영차! (이렇게 쓰다 보니) 오늘도 열심히 한 나 자신이 뿌듯하다. 그때 접영 팀이 돌아왔고, 풀에 뛰어들어 접영을 연습했다. 세상에, 모두들 월요일에 본 것보다 훨씬 더 좋아져 있었다. 제법 돌고래 같았다! 도대체 오늘 뭘 배운 거지? 하루 만에 이렇게 좋아진다니! (제발 궁금해하지 마..)


킥판과 헬퍼를 가져다 놓고 떠나려는데, 선생님이 내게 평영 발차기에 대한 더 설명을 해주셨다. “고개를 숙이면 엉덩이도 올라오고 여러모로 더 편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발차기에 먼저 익숙해지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헬퍼를 차고 고개를 들고 연습하는 것이 좋다.” 발차기를 더 세게 해야 하는 건지 물었던가, 원을 더 크게 그려야 하는지 물었던가, 나의 질문이 기억나지 않는다. “선수들을 보면 그렇게 크게 차지 않는다. 선수들은 힘이 좋기 때문에 작게 차도 충분히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면 할수록 개구리처럼 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힘이 충분히 생길 때까지 크게 차는 것이 좋다.” 힘의 세기에 대해서도 물었다. “다리를 바깥 방향으로 원을 그릴 때가 아닌, 안쪽으로 모을 때의 힘이 더 중요하다. 다리를 바깥으로 돌릴 때 힘의 세기가 3이라면, 모을 때 힘의 세기는 6-7 정도다.” 이런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설명 너무 좋다! 훌륭한 선생님! 역시 스포츠 과학이 발달한 이후에 교육을 받은 세대가 훨씬 잘 가르친다. 무용도 젊은 선생님들이 더 체계적으로 가르쳐준다. 마지막 설명은 되뇌면 되뇔수록 꼭 인생 같기도 하다. 아무튼, 자기 전에 침대에 엎드려서 힘의 세기를 분배하며 몇 번 연습해 보기로 결심은 했다.


수영장 밖으로 나와서 수메에게 평영은 고관절도 아프고 잘 되질 않아, 평영보다 접영이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선생님한테 평영 패스하고 접영 배울 수 없겠냐고 물어보라고 하셨다. 약간은 그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가 다음 달에도 한가하다면 접영을 배울 수 있겠지! (소라게..)


요즘은 식욕이 없어서 먹는 것을 줄이고 있다. 양도 횟수도. 스트레스만 사서 받지 않으면 이 상태를 충분히 더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단백질을 충분히 챙겨 먹는 일이 가장 까다롭다. 오늘도 할당량은 채우질 못했다. 그래도 한참 정체기였던 체중은 조금씩 줄고 있다. 입맛 없는 상태가 조금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유독 우울한 마음을 수영 일기로나마 달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일부터는 자유형 배영 연습을 최소화하고 평영 연습 위주로 하면 좋겠다. 시한부 스위머의 헛된 바람. 한 시간씩 연습하다 보면 얼른 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루종일 비가 와서 정말 다행이다! 농가에선 한없이 부족한 양이겠지만.. 고마운 비, 우울하다고 비를 미워하지 말자! 맨앞에 쓴 내용을 아주 약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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