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다 마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에 젖더라도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게 좋다. 오늘은 잠이 많이 부족하진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무지 피곤했다. 다리가 천근만근. 눈꺼풀도 무겁고. 어제랑은 다른 차원의 피곤함이었다. 비가 오다 말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각을 했다. 탈의를 하고 샤워장에 들어서려니 2분밖에 시간이 없었다. 늦게 들어간 죄로 사람들도 미어터지고. 다행히 수영장에서 나오신 분이 먼저 씻으라고 양보해 주셔서 1분밖에 기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어도 5분은 샤워에 썼을 거다. 서둘러 씻고 수영장에 들어가는데도 어쩜 이리 축축 처지는지. 이럴수록 준비 체조가 필요한데. 체조는 거의 막바지였다.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오늘은 자유형 발차기 두 바퀴, 평영 발차기 세 바퀴로 시작했다. 오늘은 배영이 생략되어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워밍업이 충분하지 못해서인지 호흡도 가파르고 힘들었다. 평영 발차기는 어제보다 퇴보했다. 일보 후퇴 십보전진의 효과를 맛봐야 할 텐데…. 반복 연습을 하면서 괜찮아졌다가 안 괜찮아졌다가, 기복이 심하다. 마음이 급한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은데, 차분히 해보자 싶으면서도 다시 조바심이 난다.
이제 자유형 세 바퀴, 배영 세 바퀴다. 자유형이 이렇게 힘든 적이 첫 달 말고 또 있었던가. 그땐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다시 그 힘듦이 찾아오다니. 새로운 호흡법을 익히는 것도 영 잘 되질 않고, 영화 <4등>에서 본 아역배우가 하던 다리가 벌어지는 발차기를 나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절망스럽지만 포기할 순 없어. 중간에 선생님은 내가 파- 호흡을 할 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옆으로, 그러니까 등 뒤쪽으로 나간다고 하셨다. 호흡의 순간이 짧아지면서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나도 모르게 발버둥 치는 것 같다. 앞팔의 글라이딩, 이걸 계속 까먹어서 문제다. 배영도 어제와 비슷했다. 발차기 힘도 내기가 어려웠고, 약간 졸렸다. 의식은 깨어 있어도 몸은 30%쯤 잠들어 있는 느낌. 그래도 용케 3바퀴는 돌았다.
드디어 평영을 연습할 시간이다. 선생님은 내게 위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줄고 모르고 살짝 멍을 때렸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어쨌든 나는 유아풀로 향했다. 선생님은 하체는 타일에 상체는 수면 위에 있도록 엎드리라고 하셨다. 팔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두 팔은 살짝 모아서 만세, 팔꿈치를 ㄷ자로 꺾으면서 내리고, 팔꿈치는 완전히 모아서 합장. 두 팔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고개를 들기 시작해야 하고, 합장하자마자 다시 만세 하며 고개를 물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만세를 하면 그때 발차기를 한다. 선생님은 팔도 몇 번 잡아주시고, 다리도 잡아주셨지만, 이 이상한 공식은 내 뇌에 들어오지 못했다. 여전히 띠용한 느낌.
이제는 깊은 풀에서 해볼 시간. 엉망진창이었다. 팔 한 번, 다리 한 번씩 따로 해도 이상한데, 선생님은 같이 할 것을 요구했다. 합장을 할 때 다리를 뒤로 접어서 만세를 하면서 차라고 하셨다. 언어적 설명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몸이 그걸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푸우.. 선생님은 나를 지상으로 소환해 경력자 분의 평영 타이밍을 관찰하게 하셨다. 음… 죄송합니다, 봐도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당황의 연속, 몸은 배운 적 없는 이상한 동작을 만들고 있고, 시간은 흐르고. 중간중간 이건가? 싶게 감이 올 때도 있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이것은 정신력과의 싸움이다. 해야 할 동작과 순서를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움직여야 될 확률이 높다. 알지만, 알고 있지만……. 선생님이 나의 번외 동작을 보시곤 지적해주셨다. 그건 그냥 살려고 나온 동작이었는데…. 나는 선생님께 팔다리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반쯤 포기한 듯한 초탈한 표정을 지으셨다. 일단은 팔과 다리를 따로 움직이라고, 그렇게 하다 보면 접어야 하는 타이밍을 깨달을 거라고 하셨다. 영상을 더 많이 봐야 하려나? 얼른 깨우치고 싶어. 얼른얼른! 하지만 나도 잘 알아! 조바심을 내는 게 일을 그르치는 지름길이라는 걸!
오늘 수영에선 성공의 경험을 많이 얻어서 오후에 있을 일정에 행운의 기운을 보태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괜찮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이런 연습 과제의 작은 흥망성쇠에 큰일의 운을 맡겨선 안 된다. 오후께 비가 쏟아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 일정도 무난하게 잘 소화했고, 저녁 일정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비야 비야 잘 와서 가뭄으로 힘든 곳을 잘 적셔주렴, 내 마음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