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일. 호르몬의 노예라 미안해

by 속삭이는 물결

주말 내내 또 우울감의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정작 비는 내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달 전 이맘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은 한 달 주기로 바뀌는 호르몬에 지배받고 있다는 의미다. 어제부터 비가 온다는 사실을 되새겨서인지, 아침에 깨기 직전 비가 쏟아지는 꿈을 꿨다. 지하철 출구로 나오는데 모두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멈춰 서 있고, 나는 비를 맞고 횡단보도를 건너 편의점에 들어간 것이다. 우산을 골라 계산을 하려고 하니 알바생이 왜 비를 맞으셨냐고 물었다. 우산을 사려면 비를 맞아야 하고, 비를 맞기 싫으면 우산도 살 수 없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꿈속 도시의 풍경도 이국적이었다. 벽과 땅이 온통 아이보리 색이었다. 이곳은 어디였을까? 비가 쏴아 쏟아지는 소리가 생생한 가운데 눈을 떴고, 현실은 아직 흐림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지각을 암시했다. 꿈에서 급하게 깬다는 건 역시나 천근만근 피곤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하기 때문에 서두를 힘도 없다. 무척 차분하다. 늦게 나오는 날은 꼭 버스도 오래 기다린다. 다행인 건 선생님이 늘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데 오늘도 같이 탄 것이다. 뭐가 다행이지? 사실 다행인 건 없고 약간의 위안이 주어진다는 것..? 선생님은 샤워할 필요도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수영장에 들어오면 되지만 나는 구석구석 잘 씻고 수영복도 입어야 하니 상황도 무지 다르다.


아무튼 준비 체조도 다 끝나고 모두가 음파 발차기를 출발했을 때 수영장에 입수했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 타자로 음파 발차기를 나갔다. 오늘은 그냥 자유형 발차기 2바퀴, 배영 발차기 2바퀴, 컨디션도 좋지 않고 월요일이라 기본기에 좀 더 치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유형 2바퀴, 배영 2바퀴. 배영 발차기는 햄스트링과 둔근 자극에 좋다. 은근히 힘들어서 체력이 금방 동이 나는 것 같았다.


평영 발차기는 세 바퀴를 돌았다. 세상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더니 선생님이 오셔서 파-는 짧게 하라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음파 발차기할 때처럼 고개를 매우 천천히 들었다 내리고 있었다……. 아, 우울한 월요일이여. 지난주엔 안 그랬는데, 이틀이나 평영을 안 했더니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나. 세 바퀴를 돌고 나선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풀부이를 양손에 잡고 팔 한 번 하고 3초 기다리고 다리 한 번 하고 3초 기다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대망의 첫 바퀴. 시선을 하는 데 집중했고, 몸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고 기우는 건 어쩌지 못했다. 한 세트를 하고 나면 다리가 계속 가라앉아서 거의 서 있는 자세가 됐다. 지난주에도 이랬던가? 그래서 돌아올 때는 다리를 하고 2초만 기다리기를 했다. 선생님에게 다리가 계속 가라앉는다고 했더니 선생님도 봤다고 하시며 헬퍼를 가져다주셨다. 헬퍼를 차고 하니까 다리는 덜 가라앉았다. 그러나 한 바퀴 반?을 채 돌지 못하고 수업이 끝나버렸다. 10분에 세 바퀴를 채 돌지 못하는 셈이다. 물론 마무리 체조가 끝나고 더 연습했다. 벌써 6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월요일이다. 시간은 너무 빨라.


나머지 연습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오셔서 도구의 도움을 받는 건 좋지만 항상 도구를 이용할 수는 없다며, 풀부이를 빼앗아 가셨다. 맨손으로 저기까지 가보라고 하셨다. 두 세트? 세 세트?면 끝나는 거리였다. 선생님은 도구 정리를 하느라 바빠 보이셔서 내가 하는 걸 보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보셨다고 한다. 잘했는데, 물을 수면 위가 아닌 수면 아래에서 밀어내야 한다고, 물을 치는 소리가 나선 안 된다고 하셨다. 다음부턴 헬퍼만 차고 연습하라고 하셨다. 또 무슨 설명을 더 하셨는데….


아무튼 나는 토요일에 했던 자유형 리커버리의 퍽퍽 치는 느낌이 생각나서 자유형 하고 팔이 들어올 땐 어떻게 들어와야 하냐고 물었다. 그것도 퍽퍽 치면 안 되는 거죠? 그랬더니 선생님은 엄지와 집게로 들어와야 한다고 하셨다. 두 손을 모으되 몸통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엄지와 집게가 먼저 들어오게 돼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면 의식적으로 엄지와 집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몸통을 사용한다는 게 롤링을 잘한다는 의미 같은데 나는 몸통을 너무 과도하게 돌리는 게 문제인 것 같아 물음표가 몇 개 더 떴지만 이미 다음 수업 시간이 시작된 바람에 눈치상 더 묻지는 못했다. 엄지를 먼저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두어 달 전에 배운 것도 같다. 나는 그동안 펠프스가 한다는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넣는 방식을 간헐적으로 따라 해 보고 있었다. 아무튼 손바닥을 넣어서 팡 하고 치는 건 절대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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