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일. 드디어 옆칸으로 레벨업

by 속삭이는 물결

지각이다 지각! 버스를 타는 날은 이렇게 꼭 지각을 하게 된다. 준비 체조도 끝나고 수업이 시작됐을 무렵 입장했으나, 저 멀리서부터 군중이 모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첫 번째 레인 앞쪽으로 쏙 들어가 군중에 합류했다. 토요일에 처음 본 두세 분은 부지런하신 거였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뉴 페이스가 첫 번째 레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생님은 레벨을 대충 구분하시며 왕초보 분들을 유아풀로 보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세 명을 두 번째 레인으로 보내셨다. 드디어 레벨업!


옆 레인으로 넘어가자마자 드는 생각은 ‘어마어마하게 좁다’. 폭이 좁아서인지 길이도 짧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 레인에선 이미 연습이 시작되었다. 다들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눈치껏 킥판을 들고 뒤꽁무니를 쫓았다. 자유형 1, 배영 1, 평영 1. 오며 가며 정든 할머니들과 눈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뒤늦게 합류하느라 자유형 첫 바퀴를 놓쳤나 했는데 나머지 영법의 발차기도 한 바퀴만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발차기를 한 번씩만 하는 건가 보다.


그리고 이어진 과제는 자유형 세 바퀴, 배영 세 바퀴. 어떤 할머니는 힘차게 갈 자신 있으면 가 보라고 하셨으나 겁먹은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할머니는 나를 손녀라고 칭하며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수영을 하느라 힘들다며 웃으셨다. 할머니를 뒤따라 쫓아가는 것이 아주 힘들진 않았다. 그러나 내 뒤의 아주머니 두 분은 아주 죽을상을 하고 계셨다. 그 두 분이 멈춰서 쉴 때마다 선두에 서신 분들이 뒤따라 걸으며 답답해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럴수록 더 힘을 내서 속도를 내기로 했다. 쉬지 않고 계속 왕복을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죽을 것 같진 않았다. 내 앞에 서신 할머니들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다. 시간을 체크할 틈도 없었다.


이 레인에는 오늘 처음 오신 듯한 할아버지도 계셨다. 그런데 어딘가 그루밍을 하셔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나는 분이셨다. 콧수염이 있었던가? 얼굴도 개성 있게 생기셨다. 처음엔 접영을 배울 단계라고 하셔서 우리 레인으로 오셨는데, 발차기 때부터 너무 빠르게 지치셔선 계속 지상으로 올라가 우리를 관람하셨다.


배영을 분명 3바퀴 돌았는데, 앞서 가던 분들은 한 바퀴를 더 도는 듯했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속도를 내지 못해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숫자를 잘못 셌거나. 아무튼 그렇게 모여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갈 때는 평영, 올 때는 자유형으로 총 4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부연 설명으로 평영은 다리를 굽혔다 펼치는 게 아니라 무릎을 돌려서 바깥으로 차는 거라고 하셨다.


평영의 퀄리티고 뭐고 신경을 많이 쓸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어제보다 발차기를 세게 했고 어제보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팔다리의 타이밍은 조금씩 달라져서 이랬다 저랬다 했고. 발차기를 세게 하다 보니 상체가 올라오고나 가라앉을 때마다 퍽- 퍽- 하고 치는 느낌이 났다. 턱을 당기고 가슴을 펴 보겠다는 것도 마음뿐이었지 여유 있게 조절하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앞으로 잘 나가는 게 중요했다. 갈 때는 평영, 올 때는 자유형인 이유는 아무래도 레인 폭이 좁아서 충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리곤 갑자기 접영이 시작됐다. 다른 분들에겐 접영을 하면서 숨 쉴 때 평영 팔을 하라고 하셨고, 또는 알아서 편할 대로 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와 다른 한 분에겐 킥판 아래를 잡고 어깨와 골반을 움직이며 웨이브를 해보라고 하셨다. 네? 설명이 이게 다인가요? 그분과 나는 평영 팔을 처음 배운 날처럼 어리둥절 동공 댄스 대잔치를 벌였다. “설명도 안 해주고 다짜고짜 그냥 하라고 하면 어떡해!” 나의 대사가 아니라 그분의 대사다. 그런데 그분은 곧잘 웨이브를 하셨다. 발등으로 물을 쭉 밀어내시면서 말이다. 아니 나만 모르겠나 봐? 나는 기적적으로 이상한 웨이브를 하며 레인 끝으로 도착했고, 그분께 손을 흔들며 비법을 물었다. 그분은 배운 적 없다 하며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한때 춤을 한가닥 추셨음이 분명했다.


선생님은 유아풀에서 음파를 가르치느라 바쁘신 듯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눈이 마주치는 분마다 물었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맨 선두의 여자분은 “일단 엉덩이를 들어야 해요!”라고 알려주시며 시범을 보여주시고 전진하셨다. 또 움직여 보다가 마주친 남자분에게는 “발등을 차는 건가요?”라고 물었고, 그분은 “발등으로 물을 밀어내야 해요. 접영은 보통 선수들이 출발할 때 하는 킥이거든요.”라며 지식을 전달해주셨지만 뭔가 설명에 어색함을 느끼셨는지 그대로 출발하셨다. 나는 여자분이 알려주신 대로 엉덩이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더 제자리에 머물렀다.


나에게 칭찬을 자주 해주시는 귀여운 할머니가 쉬고 계시길래 이때다 싶어 또 들이댔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유 나도 몰라, 나도 처음 해보는 거야.” “몇 번 배우셨잖아요.” “아니야 내가 결석을 많이 해서 한 번밖에 못 배웠어.” “아, 그럼 그 한 번 배우실 땐 뭘 배우셨어요?” “모르겠어. 배를 꿀렁해야 해.” “배 꿀렁이요?” 그렇게 힌트를 얻고 다시 출발해 보았다. 달라진 게 있을 리가 없다. 더 이상해지기만 하고. 갑자기 마무리 체조가 시작됐고 수업은 끝이 나버렸다. 배운 게 없다! 그 할머니에게 다시 배 꿀렁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배 꿀렁은 내가 그냥 붙인 이름이야. 배를 꿀렁하는 것 같더라고.” 하며 수직 웨이브 시범만 보이셨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평영 연습을 하며 레인 끝으로 갔다. 이 레인에는 다음 수업을 들으러 오신 할머니들이 일찍 들어와 연습을 하시기 때문에 나머지 연습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평영을 여유롭게 연습하니 아까보다 좀 더 나은 느낌이 들긴 했다. 배 꿀렁 이라시던 귀여운 할머니는 내게 평영이 참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타일 위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주셔서 겨우 올라왔다. 정말 알면 알수록 귀여운 할머니시다!


아까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지상 훈련을 조금 해봤다. 요가 블록 위에 발등을 올린 채로 엎드려서, 발등을 눌러서 엉덩이와 하체를 모두 들어 올리는 반복 연습이다.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아무래도 내일 다시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67일. 버터플라이 프로미스